퇴계 이황이 정민정(程敏政, 14451499)의 『심경부주』에 대해 강의한 내용을 그의 제자인 이덕홍(李德弘, 15411596)이 정리하여 편찬한 것으로, 『심경부주』에 대한 조선 최초의 주석서라는 점에서 그 역사적 위치와 중요성이 있다.
이덕홍은 이황 만년에 그의 문하에 나아가 여러 경전에 대한 강의를 들었는데, 그 중 하나로 정민정의 『심경부주』에 대한 강의를 듣고서 『심경질의』를 편찬하였다. 원래 『심경질의』는 어록체(語錄體)로 국한문 혼용이었으나, 뒷날 이덕홍의 문집을 간행하면서 그의 외증손인 김만휴(金萬休)가 내용을 축약하고 순한문체로 바꾸었는데, 그것만 지금 전한다.
목판본. 총 144쪽 분량으로 『간재선생속집(艮齋先生續集)』권3에 실려 있다.
『심경질의』는 정민정의 『심경부주』「서(序)」로부터 맨 마지막 「존덕성재명장(尊德性齋銘章)」에 이르기까지 그 목차 순서에 따르고 있으며, 여기에다 이황의 「심경후론(心經後論)」을 덧붙여, 그 내용 가운데 인물이나 지명, 자의(字意) 등과 중요하거나 문제가 되는 개념과 내용을 표제어로 내세워 해설하고 있다. 이때 인물에 대해서는 주로 『일통지(一統志)』 등을, 자의에 대해서는 주로 『운회(韻會)』를 참고하였다.
내용에 대한 해설은 이황에게서 수강한 것을 바탕으로 하였으며,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심학도(心學圖)」나 인심(人心)·도심(道心)에 관한 내용은 이황과 조목(趙穆)간에 오간 문답 내용을 많이 포함시켰다.
이덕홍이 『심경질의』에 서문이나 발문 혹은 자신의 안(按)을 달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생각을 읽어내기가 어렵다. 따라서 『심경질의』는 『심경부주』에 대한 이황의 견해를 비교적 잘 담고 있는 책이자 최초의 주석서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이황이 만년에 도산으로 돌아와 『심경부주』를 강론할 때 이덕홍과 더불어 조호익(曺好益), 이함형(李咸亨) 등도 함께 강의를 듣고서 『심경질의고오(心經質疑考誤)』, 『심경강록(心經講錄)』과 같은 저술을 남겼다. 조호익의 『심경질의고오』는 바로 이덕홍의 『심경질의』 내용 가운데 틀렸다고 생각되는 내용 145곳을 바로잡고자 저술한 것이며, 이함형의 『심경강록』은 자신의 『수강록』과 이덕홍의 『심경질의』를 합본한 것으로 원래 이것을 스승인 이황에게 올려 품정(稟正)을 받고자 하였으나, 이황이 죽게 되어 미처 그렇게 하지 못하였다.
이황 사후 『심경부주』는 이황과 그의 문하에서 크게 중시한 결과 ‘성인(聖人)’의 교과서에서 ‘성군(聖君)’의 교과서로 존숭되어 마침내 기호 율곡학파의 영수였던 송시열(宋時烈)이 왕명을 받들어 『심경석의(心經釋義)』를 저술하게 되었는데, 이때 그는 이덕홍의 『심경질의』를 바탕으로 하고 기호 율곡학파 여러 학자들의 견해를 포함시켰다. 이로 말미암아 『심경부주』에 대한 퇴계학파와 율곡학파 간에 논란이 크게 일어났으며, 마침내 퇴계학파에서는 『심경부주』에 대한 이황의 정본화 작업의 결실로 이상정(李象靖)과 그의 제자인 김종덕(金宗德)의 손을 거쳐 『심경강록간보(心經講錄刊補)』를 간행하게 되었다.
이처럼 『심경질의』는 『심경부주』에 대한 이황의 견해를 비교적 잘 담고 있는 책이면서 동시에 『심경부주』에 대한 최초의 주석서로서 여러 학파와 학자들 간 논란의 중심에 서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