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조선 순조(純祖) 때의 학자 정기화이다. 자는 남중(南仲), 호는 헐오재(歇五齋), 본관은 초계(草溪)이며, 고려 현종 때에 십이공도(十二公徒)의 하나였던 홍문공도(弘文公徒)의 설립자 배걸(倍傑)의 26대손이다. 1827년(순조 27)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사헌부와 사간원·홍문관 등 삼사의 청환직(淸宦職)을 역임하였으며, 세자시강원 필선(弼善)에 이르렀다.
『심사』는 우화소설(寓話小說)이면서도 ‘천군본기(天君本紀)’로 불리기도 하는데, 이야기가 천군 명원황제(明元皇帝) 원년으로부터 시작되어 30년에 끝나면서, 그 형식이 『사기』의 「본기」를 따랐기 때문이다.
저자의 사후에 아들 현석(顯奭)이 교정을 하고, 손자 헌시(憲時)가 1885년(고종 22) 덕원부사(德源府使)로 있을 당시 간행하였다.
연활자본. 1책(39장). 책크기는 25.3×15.3㎝이고, 사본(寫本: 稿本)으로 간사년(刊寫年) 미상의 1책(40張, 22.9×15.6㎝)이 있다. 권두에 정기화의 자서(自序)가 있고, 권말에 정기화의 발문과 아들 현석의 발문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인간의 성정(性情)을 의인화하여, 인간이 세상에 태어난 뒤부터 서른 살이 될 때까지의 심성의 변화 과정을 제왕가(帝王家)의 치란성쇠(治亂盛衰)에 비유하여 엮었다. 마음을 중심으로 인체의 각 기관을 의인화하여 왕국을 설정하고 거기에 치란을 서술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소설적 성격이 강하다. 이와 함께 기년식(紀年式) 사서(史書)의 체재를 충실하게 본뜬 것으로 사서(史書)로서의 성격도 있다.
저자는 심학이 인간에게 매우 중요하다고 하면서, 이 글을 쓴 목적은 전인(前人)이 말하지 못한 것을 밝히는 데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심학의 연원을 밝혀 치심(治心)에 도움이 되도록 하는 데 있다고 하였다.
작품의 총론과 내용으로 보아 당시 영남 출신의 유학자로 성리학의 심성론에 깊이 경도하였으며 높은 경지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천군계(天君系) 소설의 하나로, 임제(林悌)의 『수성지(愁城誌)』, 정태제(鄭泰齊)의 『천군연의(天君衍義)』, 황중윤(黃中允)의 『천군기(天君紀)』, 임영(林泳)의 『의승기(義勝記)』, 유치구(柳致球)의 『천군실록(天君實錄)』과 같은 계열의 작품으로, 한국 성리학과 고소설사 연구에 중요한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