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경세문답속록 ()

유교
문헌
조선후기 제21대 왕 영조가 『어제경세문답』의 속편으로 1763년에 저술한 어제(御製). 자성록.
정의
조선후기 제21대 왕 영조가 『어제경세문답』의 속편으로 1763년에 저술한 어제(御製). 자성록.
개설

1761년(영조 37)에 작성된『어제경세문답』의 속편으로 영조가 70세가 되는 1762년에 자기 자신과 세상 사람들이 경계하고 권면해야 할 덕목들을 문답형식으로 서술한 책이다.

편찬/발간 경위

69세 때 지었던『어제경세문답』의 내용을 보충하여 70세(1762)가 되던 해에 속편을 지은 후, 영조가 이듬해 5월 교서관에 명하여 목판본으로 간행하였다.

서지적 사항

어제서. 1763년 교서관에서 목판본 1책(61장)으로 간행하였다. 책의 크기는 33×22.2㎝이고, 반엽광곽(半葉匡郭)의 크기는 24×16.5㎝이다. 광곽은 사주쌍변(四周雙邊)이고, 계선이 있으며, 글자는 8행 15자이다. 판심은 상하화문어미(上下花紋魚尾)이고, 소장인은 ‘제실도서지장(帝室圖書之章)’이다.

내용

전편인 『어제경세문답』의 체제는 별도의 서문이나 발문 없이 본문만으로 구성되었으며, 본문은 문답식, 즉 ‘문왈(問曰)~, 답왈(答曰)~’의 형식으로 매 주제에 대하여 기술되었다.

본문의 첫머리에는, “말세의 풍속을 부끄러워하고 개탄하여 글을 짓게 되었다.”고 하였으며, 영조실록의 관련 기록에는, ‘스스로를 경계하면서 세상을 경계하는 뜻을 취하였다.’고 설명되어 있다. 내용은 『중용』과 『대학』을 토대로 수신·제가·치국의 도를 말하고, 기타 경사(經史)를 인용하여 자신의 생활관이나 통치관을 기술하였다.

『어제경세문답』은 교서관에서 목판으로 인쇄되었고, 속편인『어제경세문답속록』은 전편의 체제를 따라 서문이나 발문이 없고, 본문 역시 ‘문왈~, 답왈~’의 문답식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문왈’에 해당하는 부분은 영조 자신이 가설한 자문자답의 형식으로 되어 있다.

문답의 주제는 총 31개이며, 여기에는 자식된 도리, 『중용』을 통해 깨달은 점, 법강(法講)의 복식 문제, 『심잠(心箴)』이나 『논어(論語)』·『주례(周禮)』 등의 문장, 통치자의 도리에 관한 것 등 다양하다. 특히 전편에서 강개(慷慨)한 이유를 자문한 후에, 이에 대하여 “전편은 후세 사람을 면려하기 위한 것이었고, 속편은 스스로 면려함을 보이는 뜻”이라고 자답함으로써 이 편이 전편인『어제경세문답』과 상호보완의 관계에 있음을 강조하였다.

이 편은 영조의 노년기 어제서에서 자주 보이는 자성적이면서도 경세적인 성격이 강한 글로써, 자기반성을 통해 후대인을 면려하려는 의도가 잘 드러나 있다.

의의와 평가

영조가 지은 여러 어제서는 영조 당대에 금속활자, 목활자, 목판으로 인쇄되었다. 또한 이 가운데 일부는 반사되거나 번각되어 조정의 신하에게 하사되기도 하고 강학의 자료가 되기도 하였다.

『어제경세문답속록』은 이러한 성격의 글로써 영조의 통치철학과 제왕학, 나아가 삶과 문학에 대한 인식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영조실록(英祖實錄)』
『어제경세문답(御製警世問答)』
『영조어제훈서(英祖御製訓書)』
「영조어제첩에 나타난 영조노년의 정신세계와 대응」(노혜경,『장서각』제16집, 2006)
「영조어제첩의 체제와 특성」(김상환,『장서각』제16집,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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