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보』에서는 1914년 1월 28일부터 같은 해 6월 11일까지 100명의 예술인들을 대상으로 기사를 연재하였는데, 이 기사의 제목을 「예단일백인(藝檀一百人)」이라 하였다.
『매일신보』에서는「여자직업」이라는 기사가 끝나자, 1914년 1월 28일부터 「예단일백인」을 연재했다. 1914년 1월 21일 『매일신보』에는 “본사에서는 특별한 고심으로 전국의 남녀를 물론하고, 가무음곡(歌舞音曲) 등 예술에 뛰어난 인물 100인을 수집하여 음력 정월 일부터 예단에 올리겠으니, 사진을 보고 기사를 참조하면 진진한 취미는 그 중에 스스로 있을 것이라. 제1회 벽두에는 어떠한 인물이 나올는지”라고 하여 앞으로 연재될 「예단일백인」의 기사를 광고하는 문구를 기재했다.
「예단일백인」에는 해당 예술인들의 사진을 크게 게재하고, 예술인의 고향과 살아온 과정, 예술적 장기 등을 간략하게 적고 있다. 예술인에 대한 설명은 기자의 입장에서 개략적으로 요약하여 적었고, 이후에 기생이 스스로 한 이야기는 본인의 말투를 그대로 받아 적고 있다. 특히 기생일 경우에는 어떤 사연으로 기생이 되었는지, 앞으로 결혼할 생각이 있는지 등에 대해 묻고 답한 내용이다.
「예단일백인」에 소개된 예술가들은 당시 일류의 예술가들이었다. 그 가운데 이병문, 지용구, 심정순, 박춘재와 같은 남자 음악인들이나 임성구, 서상호 등과 같은 연극인, 변사(辯士) 등을 제외하면 나머지 89명이 모두 여성이고 신분은 모두 기생이다. 이병문은 당시 조선정악전습소(朝鮮正樂傳習所)의 교사였으며, 거문고와 해금의 명인이었던 지용구, 판소리 명인인 심정순, 경기잡가(京畿雜歌)의 명인인 박춘재, 역시 여류 판소리 명창으로 이름을 날렸던 이화중선(李花仲仙, 1898∼1943) 등 중요한 예술인들이 다루어지고 있다.
「예단일백인」에는 근대 예술인의 신상명세에 가까운 정보가 담겨 있어 근대음악사와 문화예술사의 중요한 자료로 손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