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이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문장 내의 단어들이 각자의 의미 역할을 적절하게 담당해야 한다. “철수가 책을 산다”에서 ‘철수’는 행위의 주체라는 역할을, ‘책’은 행위의 대상이라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러한 의미역은 서술어와 어울려 문장을 이룰 경우 명사구들이 갖는 의미 내용인데, 이 때 서술어와 함께 쓰이는 표현들을 그 서술어의 ‘논항(argument)’이라고 한다.
의미역은 서술어에 따라 다른 명사구의 의미에서 공통성을 추출한 것이다. 예를 들어, “그가 노래를 불렀다”와 “철수가 집으로 짐을 옮겼다”에서 ‘그’는 노래 부르는 사람이고, ‘철수’는 짐을 옮기는 사람으로서 실제로 둘이 같은 것은 아니지만, ‘행동주’라는 공통된 의미역을 갖는다. 또한 “The key opens the door”와 “The door opens”, “The child opened the door”에서 각각의 주어는 ‘도구, 사물, 행위자’를 상술한다. 이 경우 door는 목적어 또는 주어로 나타나지만 그 의미역은 세 문장 모두에서 피동주이다. 이처럼 의미역은 문법 구조에 반영되는 의미의 측면을 파악하기 위해 고안된 것으로 사태에 대한 고정된 해석을 전제로 한다.
의미역은 원어로 ‘thematic role’, ‘θ role’, ‘theta role’, ‘semantic role’이라고 한다. ‘θ role’ 또는 ‘theta role’은 ‘thematic’에 대한 그리스어 θ(‘theta’)에서 온 것이다.
의미역은 서술어의 의미를 구성하는 데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필수적 의미역’과 문장에서 서술어의 의미를 보충하는 ‘수의적 의미역’으로 나눌 수 있다.
‘필수적 의미역’은 대개 행동주, 도구, 피동주, 경험자, 수혜자, 출처, 도달점 등으로 분류된다. ①행동주(agent)는 어떤 행위를 하는 주체로 대개 유정물이며 고의성이나 의도성을 가진다. (예) 철수가 편지를 쓴다. ②도구(instrument)는 행위의 수단이 되는 것이다. (예) 열쇠로 문을 연다. ③피동주/수동자(patient)는 어떤 행위에 영향을 받거나 상태 변화를 겪는 것을 말한다. (예) 철수가 옷을 입었다. ④경험자(experiencer)는 술어에 의해 내적인 상태에 영향을 받는 것인데, 행동주와는 달리 의도성을 나타내는 부사(구)와 결합할 수 없다. (예) 철수가 냄새를 맡았다. ⑤수혜자(benefactive)는 어떤 행위가 행해졌을 때 이익을 받는 개체이다. (예) 내가 철수 대신 예약해 주었다. ⑥출처/근원(source)은 술어가 나타내는 사건에 의해 어떤 대상이 그로부터 이동하게 된 원래의 장소를 말하는데, 장소 외에도 행동의 동기나 이유가 출처가 되기도 한다. (예) 나는 도서관에서 책을 빌렸다. ⑦도달점/목표(goal)는 행위가 목적하는 곳으로 출처와 대칭적인 개념이다. 도달점은 공간적 목적지뿐만 아니라 심정적, 주관적 목적지까지 포함한다. (예) 나는 책을 책상 위에 두었다.
‘수의적 의미역’으로는 장소/위치(locative), 이유(reason), 목적(purpose), 경로(path), 시간(time), 방법(manner) 등이 있다. 이들 의미역은 통사적인 분석에서 의미역 기준(theta criterion)에 따라 하나의 명사구는 하나의 의미역만을 갖는다.
의미역은 의미론과 통사론 사이의 상호작용하는 접점을 밝히는 데 기여하며, 여러 서술어 부류의 특성을 기술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러나 의미역의 종류와 수, 경계를 결정하는 데는 학자들마다 차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