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 수공업자, 어민 등 직접 생산자들이 일정한 날짜와 장소에서 서로 생산물을 교환하던 농촌지역의 정기시장은 오랫동안 재래 상업의 중추적 역할과 농촌사회의 경제, 사회, 문화생활의 중심지로서 기능하여 왔다.
우리나라에서 정기시장은 15세기 후반부터 서울과 중부이남 지방 각지에서 정기시장이 자생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하였으며 17세기 초에는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만기요람』에는 19기 초 8도 327개 군, 현에 1061개의 장시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임원경제』에 따르면, 순조 30년(1830년)경에 1,052개의 장시가 있었는데 그 중에는 5일마다 열리는 5일형 장시는 905개소, 10일형은 125개소 15일형은 18개소, 3일형은 4개소였으며, 장시의 분포는 경상도가 268개소로 가장 많았고, 51개소의 강원도와 42개소의 함경도가 적었다.
5일장의 유래는 이와 같이 장시가 월 6회, 매 5일마다 열리는 5일형이 가장 많았기 때문에 장시를 5일장으로 부르게 되었으며 오늘날에는 옛 것을 살리자는 의미에서 이것을 민속장으로도 부르게 되었다.
정기시장은 단순히 물건이 거래되는 경제활동의 공간으로서만이 아니라 전통적으로 우리나라 농촌사회의 중요한 사회문화적 공간으로서 기능하였다. 즉, 정기시장은 물품 교역의 장, 상품생산의 장, 정보교환, 수집, 홍보의 장, 오락과 유희의 장으로서 농촌 공동체의 사람들이 서로 만나고 인간관계를 유지시키는 경제활동과 사회문화적 가치의 실천공간이었다. 이러한 정기시장의 역할은 우리나라 근대화를 거치면서 크게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현재까지 우리나라 정기사장의 변동은 우리사회의 근대화과정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20세기 들어 일제시대에서 1960년대까지 전통적인 농업사회에 머물러 있던 시기에 정기시장은 농촌사회의 중요한 시장제도로서 발달하였지만, 1970년대 이후 근대 산업사회로 변모하면서 정기시장은 그 중요성을 상실해 왔다. 교통의 발달, 농촌인구의 감소, 농산물 유통체계의 근대화, 상설시장과 대형할인매장 등 현대적인 유통시설의 발달과 함께 최근 통신판매, 방문판매, 배달과 운송제도의 일상화가 진전되면서 정기시장의 수는 급격히 감소하였다. 이러한 정기시장의 감소는 결과적으로 농촌경제의 침체와 지역주민 간 사회적 유대도 약화시키게 되었다.
정기시장의 변화는 우리나라의 산업화와 도시화라는 거시적인 국가경제의 흐름에 따른 요인들과 함께 지역의 특성에 영향을 받은 결과이다. 따라서 전반적으로 정기시장이 위축되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개별 시장은 지역특성에 따라 상이한 변화를 겪고 있다. 특히 정기시장이 근대화 속에서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곳은 정기시장이 사회문화적 시간제도를 토대로 한 것이기 때문에 주민들의 생활문화적 시간 관습과 그 관행이 계속 유지된 결과로 간주된다.
2006년 현재 전국의 정기시장 현황을 보면, 광역시의 15개를 비롯하여 경기도 51개, 강원도 41개, 충북 39개, 충남 49개, 전북 43개, 전남 93개, 경북 97개, 경남 85개, 제주 9개 등 총 522개가 운영되고 있다. 지역적으로 보면 경북과 전남, 경남에서 많은 반면 경기도와 광역시에서 적어서 면적과 인구 그리고 도시화가 상대적으로 낮은 지역에서 주로 정기시장이 분포함을 알 수 있다.
정기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을 보면, 해당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수산물과 가공식품, 먹거리, 축산물이 주를 이루고 있다. 주로 내륙 평야지대는 곡물과 채소가, 해안지대는 수산물이, 산간지대는 과일과 나물류가 특산품으로 판매되고 있다.
농촌사회에서 전통적인 경제활동공간이자 사회문화적 공간으로 기능한 정기시장은 우리나라 근대화과정을 통해서 크게 위축되어 왔지만, 그 과정 속에서도 지역별로 상당히 존속해 온 것도 사실이다. 이는 농촌사회 주민의 생활공간적 관습에 기초한 것으로서 그 기능이 근대화와 흐름과 역행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보완적임을 보여준다. 특히 최근 들어 농촌의 내재적 발전을 위해 필요한 자원으로서 농촌의 전통유산이 주목을 받고 있는데, 이러한 맥락에서 정기시장이 새로운 농촌사회의 발전역량을 구성하는 자원으로 활용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