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전도(朝鮮全圖)」의 모본은 서울의 관부에 보관된 정상기(鄭尙驥, 1678∼1752)의『동국지도(東國地圖)』로 추정된다. 한자로 표기된 소수의 지명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산천, 도시 등이 로마자로 표기되어 있다는 점에서 프랑스 선교사들의 조선입국을 돕기 위해 제작한 지도임을 알 수 있다.
이 지도는 1846년 심부름꾼을 몰래 변문(邊門)에 보내어 대기하던 메스트르(Maistre, 요셉, 1808∼1857) 신부와 최양업(崔良業, 토마스, 1821∼1861) 부제에게 전달되었다. 이후 상해의 프랑스 총영사 몽티니(Montigny)의 손을 거쳐 1855년프랑스 왕립도서관에 기증되었으며, 1855년 프랑스 지리학회지를 통해 유럽에 소개되었다.
1979년 최석우 신부가 파리국립도서관 지도부에 보관되어 있던 지도를 마이크로필름에 담아 국내 학계에 소개하였다. 동시에 원본(축척=1,981,500분의 1)보다 축소된 가로 48.5㎝, 세로 88㎝로 복원, 제작하여「조선전도」라는 제목을 붙여 간행하였다.
「조선전도」는 만주의 봉황성(鳳凰城)에서 의주 변문에 이르기까지의 육로와 한강 하구를 중심으로 서해안 일대의 해로(海路)를 자세히 그렸으며, 섬들과 각 지방의 감영(監營), 병영(兵營), 수영(水營) 등 주요 행정, 군사 중심시가 표시되어 있다. 또한 동해의 울릉도 옆에 우산(于山)으로 표기된 독도(獨島)가 있고, 간도(間島)로 추정되는 압록강두만강 북부의 일정지역이 별도의 경계선 안에 포함되어 있다는 점 등에서 제작자의 철저한 영토의식을 잘 보여준다.
「조선전도」는 일부 지역의 경계, 관부의 위치, 강의 지류 등이 부정확하거나 누락되어 있다는 점에서 미완성 지도였다. 그렇지만 19세기 중반까지 서구에 알려진 당빌(D’Anville)이나 지볼트(Siebold)의 조선지도보다 훨씬 더 많은 지명이 한국식 발음으로 표기되어 있다는 점에서 서구사회에 우리나라를 보다 정확하게 알려준 지도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