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희가 『대학장구(大學章句)』와 『대학혹문(大學或問)』에 근거해서 『대학』 원문을 해석하고 당시의 정치적 폐단을 덧붙여 강의한 내용을 모아 엮은 책이다. 그는 영종이 즉위한 1194년 65세에 환장각대제겸시강(煥章閣代制兼侍講)에 임명되어 영종에게 『대학』을 진강하게 되지만, 당시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한탁주(韓托胃, 1152~1202?)를 공격하다 40일 만에 면직되는 바람에 「성의장(誠意章)」까지만 남아 있다.
이 책은 『대학』 원문 다음에 작은 글씨로 ‘신희왈(臣熹曰)’로 시작하여 『대학장구』을 인용하였고, 다음 행에는 원문과 같은 크기의 글씨로 ‘신절위(臣竊謂)’로 시작하여 『대학혹문』을 인용하고 있다. 하지만 45세 때인 1174년 무렵에 완성한 『대학장구』와 『대학혹문』의 내용을 있는 그대로 옮기지는 않았다. 기본 내용은 『대학장구』와 『대학혹문』에 기초하되 내용을 압축되거나 생략하는 등의 차이가 있다.
사서(四書) 가운데서도 『대학』을 가장 우선시했던 주희의 관점에 따라, 이 책의 시작 부분에는 대학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곧 대학(大學)은 대인(大人)을 키우는 학문으로 궁리(窮理)·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의 도(道)를 담고 있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주희는 이런 내용을 담고 있는 『대학』을 버리고 군자가 수기치인(修己治人)의 이상을 실현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대학』에 대한 주희의 대표적인 두 작품, 곧 『대학장구』와 『대학혹문』을 하나로 통합해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사상적인 의의를 갖는다. 또한 사서 가운데 『대학』이 조선시대에 제왕학(帝王學) 교과서로 중요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