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자의 글을 선집(選集)한 기존의 여러 학문적 성과를 종합해서 『주자대전』의 체제에 따라 집대성한 저서이다.
정조는 조선시대에 유학자들이 정통으로 섬기던 주자의 『주자대전』에 대해 여러 학자들이 초집(鈔輯)한 책들을 종합적으로 집대성하고자 하였다.
주자학을 신봉하는 많은 유학자들은 성인의 도(道)가 육경(六經)에 모두 있고, 육경의 의리는 주자에 의해 밝혀졌다고 보았다. 이런 입장에 따라 『주자대전』이 많이 초선(鈔選)되었다. 대표적인 성과로 중국에서는 왕백(王柏)이 지은 『자양서시류(紫陽書詩類)』, 고반룡(高攀龍)이 지은 『주자절요(朱子節要)』를 들 수 있다.
조선의 경우에도 이황(李滉)의 『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 정경세(鄭經世)의 『주문작해(朱文酌海)』, 그리고 이 『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와 『주문작해(朱文酌海)』에 보유(補遺)를 더하여 만든 송시열(宋時烈)의 『절작통편(節酌通編)』이 있다.
정조는 이 가운데 가장 체계를 갖춘 저서로 송시열의 『절작통편』을 높이 평가하였다. 하지만 『절작통편』에는 주자의 소(騷), 부(賦), 사(詞), 조(操) 등이 누락되어 있어서 정조는 서명응에게 명하여 소(騷), 부(賦), 시(詩)의 여러 편을 뽑아 권두에 두도록 하였다. 그리고 『주문작해(朱文酌海)』에서 뽑은 서찰은 따로 별집(別集) 다음에 채워 넣도록 하고 이름을 「보편(補編)」이라고 하였다.
또한 주자가 『정씨외서(程氏外書)』를 모아서 엮은 방법에 따라 『주자대전』에 수록되어 있지 않은 주자의 글 몇 편은 「외편(外編)」에 실었다.
『주자대전』의 규모와 편차에 따라 만든 이 『주자회선(朱子會選)』은 명칭 그대로 제유(諸儒)가 선집한 주자의 글을 종합적으로 모아서 집대성한 저서이다.
훗날 학자 군주, 곧 군사(君師)를 자임하는 정조가 어린 시절부터 주자의 글과 사상에 조예가 깊었으며, 조선의 주자학을 집대성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