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호세코 시게가스는 1881년에 펴낸 『교린수지(交隣須知)』와 1882년에 펴낸 『인어대방(隣語大方)』의 인쇄자로서, 1883년에 펴낸 『교린수지』의 산정자(刪定者)로서 알려져 있다. 그는 일찍이 부산에 건너와 한국어를 배워 한국어 능력은 탁월했으며, 이로 인해 조선어학소의 한국어 학습서 인쇄에 직접 관여했다.
오늘날 호세코 시게가스가 주목받는 것은 근대 이래 한국어 학습서의 대표 격이었던 『교린수지』와 『인어대방』을 간행하는 데에 중추적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한어입문(韓語入門)』이라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새로운 형식의 한국어 학습서를 제작했다는 점 때문이다.
권두에 있는 저자의 서언에 따르면, “종래에 한국어 학습에 10년이나 걸린 것은 문법서가 없었던 까닭이다. 문법은 마치 공장(工匠)의 규구(規矩)처럼 잠시도 없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래서 뒷사람의 어려움을 덜기 위하여 앞사람의 책에 의존하여 이 책을 저술하였다”고 하였다. 교열은 조선인 이서경(李瑞慶)이 보았다.
활자본. 상·하 2권 1책. 상권은 제서(題書) 2장, 서언 2장, 범례 2장, 목차 5장 및 본문 39장을 합하여 50장이다. 하권은 본문과 판심이 저자장판(著者藏板)으로 된 내용의 32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어입문』은 『교린수지』와 『인어대방』등에서는 볼 수 없었던 한국어의 음운과 문자에 대한 해설이나 문법적인 분석, 경어와 방언의 문제 등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학습서류와는 크게 다르다.
물론 범례에 『교린수지』와 『인어대방』등의 책명이 언급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한어입문』을 제작하는 데에 기존의 학습서들이 이용되었다. 하지만 같은 범례에 보이는 기술과 같이 종래의 학습서와는 달리 대역(對譯) 형식을 취하지 않고 다만 한자어의 경우 한자를 병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 대역 형식이 한국어 학습에 오히려 해롭다고 언급하고 있어서 흥미롭다.
한편, 이 책의 본문은 4편 21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상권에는 2편 3장까지가 수록되어 있으며 나머지는 하권에 두었다. 본문의 개략적인 내용은 먼저 상권에서 한국의 철자법과 의미 분류에 의한 기본 어휘를 기술했다. 이어서 하권에서는 문법적인 분석과 해설을 시도했다. 특히 문법 해설에 있어서는 먼저 형태론적인 분석을 한 뒤, ‘연어(連語)’라는 항목을 두어 한국어 구문에 접근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동시에 마지막으로 「소학독본(小學讀本)」의 한국어역을 수록함으로써 본격적인 문장을 접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즉, 한국어를 ‘문자→단어→문법→문장’의 순으로 학습이 가능하도록 고려한 체제를 갖춘 문법서라고 할 수 있다.
『한어입문』에서는 한글의 자모를 99음도(音圖)로 파악하고 있다. 이것은 일본어의 50음도와 같이 한국어를 분석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99음은 자음 11음(ㅏ, ㅑ, ㅓ, ㅕ, ㅗ, ㅛ, ㅜ, ㅠ, ㅡ, ㅣ, ㆍ)과 모음 9음(ㄱ, ㄴ, ㄷ, ㄹ, ㅁ, ㅂ, ㅅ, ㅇ, ㅈ)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것은 오늘날의 자모음 개념을 뒤바꿔 놓은 것이다. 또한, ‘ㅎ’을 경음으로 별도로 분류하고 있으며 ‘ㅋ, ㅌ, ㅍ, ㅊ’은 격음으로 처리하고 있다.
명사는 총괄명사(總括名詞), 보통명사(普通名詞), 독립명사(獨立名詞)로 구분하고 있다. 총괄명사는 집합적인 의미를 가진 명사이며, 보통명사는 총괄명사의 일부분에 속하는 명사를, 그리고 독립명사는 고유명사를 뜻한다. 명사가 문장에서 쓰이는 격을 주격(主格), 물주격(物主格), 목적격(目的格)으로 구분하고 있다. 인칭을 제1인칭, 제2인칭, 제3인칭으로 분류하고 있으나, 2인칭과 3인칭의 구별이 명확하지 않다. 또한, 대명사는 인대명사(人代名詞: 내, 당신, 그ᄃᆡ, 자ᄂᆡ, 너, 우리, 당신네, 그대네 등), 의문인대명사(疑問人代名詞: 뉘), 의문대명사(疑問代名詞: 엇지, 얼마, 몃 등)로 분류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면, 고로, ᄯᅩ, ᄯᅩᄒᆞᆫ’ 등의 접속사를 설정하고, 동사의 시제 분류는 미연(未然), 현재, 과거의 3분법을 취하였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한어입문(韓語入門)』은 명치 연간에 들어 처음 제작된 서구식 한국어 학습서라는 점에서 근대 한국어 학습서의 효시적인 위치에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 이 책에는 한글에 대한 해설과 음운적인 분석을 시도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사항은 전근대기의 학습서에서는 볼 수 없었던 주목되는 변화로 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