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도방주자동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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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문신 권희가 한성부 남부 훈도방 주자동(鑄字洞)의 연혁과 풍속을 기록한 지방지. 동지.
정의
조선시대 문신 권희가 한성부 남부 훈도방 주자동(鑄字洞)의 연혁과 풍속을 기록한 지방지. 동지.
편찬/발간 경위

권희가 박승종의 동의를 얻어 편찬한 책이다. 발문에 의하면『여지지(輿地志)』의 편차를 따라 동지(洞志)를 만들어, 주자동의 사적을 현창하고 충신과 명현을 기리며 그 기풍을 널리 알리고자 하였다. 발문에 기록된 ‘천계원년계추(天啓元年季秋)’ 간기를 통해 1621년에 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서지적 사항

목활자본. 1책 36장. 훈련도감자본(訓鍊都監字本). 크기는 규장각 소장본 32×20㎝,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 32.8×19.8㎝, 서울역사박물관 소장본 32.6×20㎝이다. 원본은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고4790-16), 국립중앙도서관(고귀5409-3)과 서울역사박물관(서3-1)에 각각 소장되어 있으며, 내용은 동일하다.

각 본의 내제는「훈도방주자동지(薰陶坊鑄字洞志)」이다. 표제의 경우 규장각 본은 내제와 동일한 표지와 함께「주자동지(鑄字洞誌)」라고 표기된 속표지가 있으며, 서울역사박물관 본의 표제는「주자동지(鑄字洞誌)」이다. 영인본은『조선시대 사찬읍지 경기도 1』(한국인문과학원, 1989),『규장각자료총서 지리지편 경기도읍지 4』(서울대학교 규장각, 1998),『망우동지 · 주자동지』(서울역사박물관, 소장유물자료집Ⅰ, 2003)로 발간되었다.

내용

1621년 권희가 편찬한 한성부 남부 훈도방(薰陶坊) 주자동(鑄字洞)의 연혁과 풍속을 자세히 기록한 지리지이다. 주자동은 현재 서울시 중구 주자동 일대로 명동역과 충무로역의 중간 지역에 해당된다. 주자동이라는 지명은 조선시대에 서적의 반인(頒印)을 담당하는 교서관(校書館)의 외관(外館)이 이곳에 있었던 데에서 유래되었다. 밀창부원군(密昌府院君) 박승종(朴承宗)의 서문으로 시작하는데, 이 지역이 예부터 공명을 탐하거나 이익을 쫓는 사람들이 살지 않고 서책을 인쇄하는 공인들과 독서를 업으로 하는 사대부들이 살아온 곳이라는 자부심이 담겨 있다. 또한 어려울 때 서로 돕고 부자와 빈자가 서로 위하는 기풍이 서려 있어서 효자와 충신을 배출한 곳으로, 기묘사화(己卯士禍)와 을사사화(乙巳士禍)에 걸쳐 충효한 인물들이 많이 배출되었음을 칭송하였다.

본문은 공관(公館) · 고적(古跡) · 풍속(風俗) · 효자(孝子) · 절부(節婦) · 명환(名宦)의 7개 조목으로 구성되어 있다.「공관」은 교서관의 업무와 관원의 구성을 적은 것인데, 주자동이라는 이름이 교서관이 자리한 데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연혁 대신 서두에 들어간 것이다.「고적」에는 국사당 근처 암석 밑에 있는 성재정(聖齋井), 매년 봄 · 가을에 동네 사람들이 모여 강신하는 강신대(講信臺), 탑현(塔峴), 어수정(御水井), 폭포(瀑布)가 기록되어 있다.「풍속」에는 풍속이 순하고 두터워 혼례나 상례시에는 서로 돕는데, 이는 계헌에 따른다고 기록되어 있다.「효자」에는 편자의 부친인 권상(權常) 관련 내용이 3장에 걸쳐 자세히 기록되어 있고, 뒤이어 순천군(順川君) 관(琯), 이영윤(李榮胤), 서상남(徐尙男)과 천민인 조명중(趙命仲)의 전기가 소개되어 있다.「절부」에는 사인 권규(權規)의 아내 유씨, 그리고 말금, 의정부에 소속된 계집종이었던 세옥이 소개되어 있다.

본문의 중심인「명환」은 주자동에 거주했던 주요 인물들의 약력을 정리하였으며, 구택의 소재를 아는 경우 이를 말미에 부기하였다. 명환에 소개된 인물은 문성공 안유(安裕)의 6대손인 안종약(安從約)과 그의 증손인 안호(安瑚) · 안침(安琛) 형제, 영의정을 지낸 창녕부원군 조석문(曹錫文), 양촌권근(權近)의 손자인 권람(權覽)과 권람의 아들 권건(權健), 기묘명현(己卯名賢)인 종남수(終南守), 기준(奇遵), 박세희(朴世熹), 정응(鄭譍), 조우(趙佑), 안향의 후손인 안정(安珽), 김익(金釴), 채세영(蔡世英) 등 8인, 이현보(李賢輔), 정황(丁熿), 권응창(權應昌), 퇴계이황의 형인 이해(李瀣), 유진동(柳辰仝), 정세호(鄭世虎), 이지번(李之蕃)과 그의 아들 이산해(李山海), 박충원(朴忠元), 박계현(朴啓賢), 황림(黃琳), 김충갑(金忠甲), 권준(權準), 권수(權燧), 정숙하(鄭淑夏), 권협(權悏), 김시민(金時敏), 경섬(慶暹), 권흔(權昕) 등 도합 42명이다.

본 책의 말미에는 편찬 목적을 기록한 김치(金緻)의 발문이 실려 있다.

의의와 평가

『훈도방주자동지』는 17세기에 흔하지 않던 조선 후기의 동지 제작이라는 점에서 큰 가치가 있다. 본 책의 주 내용인「명환」항목에는 조선 전기 고위직에 오른 인물들과 기묘명현에 관한 기록이 대거 포함되어 있다. 또한, 이산해와 같은 인물도 수록되어 있어 이 책이 편찬된 광해군대의 한성 일부 지역의 풍속과 연혁,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서 평가된다.

참고문헌

『훈도방주자동지(薰陶坊鑄字洞志)』
『망우동지·주자동지』(서울역사박물관, 소장유물자료집Ⅰ, 2003)
『규장각자료총서 지리지편 경기도읍지 4』(서울대학교 규장각, 1998)
『조선시대 사찬읍지 경기도 1』(한국인문과학원,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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