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원은 본관이 전주이고, 자는 원포(元浦), 호는 송암(松菴)이며, 시호는 충헌(忠憲)이다. 1566년(명종 21) 별시에 장원급제한 후 홍문관수찬 등을 거쳐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는 도승지로 왕을 의주까지 호종하여 형조참판에 제수되었다. 그 뒤 중추원의 첨지중추부사, 한성부판윤 등을 역임하였다. 1604년(선조 37) 호성공신(扈聖功臣) 2등으로 완양부원군에 이르고 공조판서에 제수되었다.
화면의 우측 상단에 “完陽府院君六十八歲時容(완양부원군육십팔세시용)”이라는 표제가 있어 그의 68세 때 모습임을 알 수 있다. 이충원이 호성공신으로 책록되었을 때 왕명에 의해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1998년 4월 13일 경기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어, 경기도 여주시의 전주이씨덕천군파종회에 소장되어 있다.
비단 바탕에 채색한 작품으로, 크기는 세로 164㎝, 가로 89㎝이다. 좌안7분면에 공수(拱手)를 하고 의자에 앉아 있는 전신교의좌상으로, 오사모에 쌍 공작과 모란문의 흉배가 부착된 단령을 입고 서대(犀帶)를 두르고 있다. 공수한 사이로는 흰 옷소매가 보이고, 단령의 옆트임 사이로는 옥색 바탕에 푸른색의 운문이 든 첩리(帖裏)와 녹색 고(袴)가 보인다. 흑피혜를 신은 양 발은 족좌대 위에 ‘八’자 모양으로 가지런히 놓여 있고, 바닥에는 화려한 채전이 깔려 있다.
안색은 맑게 채색되어 있고 안면의 외곽선과 이목구비 등은 피부색 보다 약간 진한 토색(土色) 계열로 변화를 주면서 표현되어 있다. 눈썹이나 수염은 먹색과 호분을 사용하여 터럭 한 올까지도 상세하게 그려냈으며, 68세라는 나이답게 피부의 노화에 따른 안면의 반점이나 잔털까지도 묘사되어 있다. 한편, 옷주름 선은 변화 없는 굵은 먹 선으로 대범하게 그어 넣었는데, 이러한 기법은 단령의 구름 문양이나 채전의 질감을 공들여 묘출해낸 섬세한 묘사와는 대조를 이룬다.
복식과 자세, 얼굴의 표현 등 당시 호성공신 2등이었던 유근(柳根, 15491627), 신잡(申磼, 15411609), 이원익(李元翼, 1547~1634) 초상과 거의 유사하다.
좌안7분면의 안정감 있는 자세와 관복의 형태, 평면적이면서도 화려한 채전의 표현 등으로 보아 유근영정칠십일세상(보물, 1972년 지정), 신잡초상(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 1977년 지정) 등과 유사하며, 조선시대 초상화의 사실적이고 치밀한 기량을 보여준다. 또한, 제작시기와 제작의도가 분명하여 공신도상 연구에 주목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