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6년에 통도사에서 시작된 2년 과정의 명신학교는 1916년 4월 1일에 창설한 통도사 지방학림으로 이어진다. 통도사 지방학림은 당시 승려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기관으로 수학 연한 3년의 중등교육기관이었다. 교실은 통도사 경내의 천자각을 이용하였으며, 초대 교장은 김구하 당시 통도사 주지가 맡았으며 학감에 신태호, 교사로는 김월제, 정택, 최병호가 재직했다. 통도사 지방학림 출신으로 서울에 유학중이던 오택언이 통도사로 내려와 1919년 3월 13일에는 신평 시장에서 독립만세사건을 주도하였다.
지방학림의 폐지는 1925년경으로 추정되며, 그후 1934년 4월 1일에 사립 통도중학교로 새롭게 개교하였다. 학교 건물은 경내의 요사나 전각이 아닌 독립된 건물과 대·소 운동장을 갖추었으며, 지금의 통도사 일주문 밖이다. 당시 통도중학교는 매년 총독부 산하 경상남도지사의 인사를 받아 운영하였으며 학생은 승려 및 신도의 자제들이었다. 통도중학교는 1944년 1월 21일 제5회 졸업생을 마지막으로 그해 3월 1일 일제에 의해 강제 폐교되었다.
광복 이후 통도사와 범어사에서 일천만원(당시 화폐)을 출연하여 불교 경남교무학원을 설립하고 1946년 7월 보광초급중학교의 설립인가를 미군정청 문교부에 신청하여 같은 해 9월 5일 인가를 받았고, 그로부터 열흘 뒤 정식 개교하였다. 당시 교사와 운동장은 통도중학교의 것을 그대로 사용하였으며, 각 학년 3학급(1학급 50명) 총 150명으로 출발하였다. 교명은 ‘널리 빛을 밝혀 온 세상을 환하게 한다’는 뜻의 보광(普光)으로 하였으며, 당시 교훈은 신(信)·성(誠)·경(敬)·애(愛)였다.
사회교화와 포교를 위한 종교교육도 일부 있었으나 공민(公民)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남자중학교로 재출발하였으며(실제는 여학생도 있었음), 1961년 10월 30일에는 통도사 구내에서 현 위치로 이전하였다. 1975년 2월 27일에 영산학원이 설립되어 이전 원효학원이 경영하던 보광중학교를 인수 경영하고 있다. 2000년 6월 한국전쟁 50주년을 맞아 참전 학도병 가운데 졸업장을 받지 않은 15명에 대해 명예졸업장을 수여하였다.
교훈은 ‘나를 알자, 서로 돕자, 정직하자’이며, 교화는 장미, 교목은 느티나무이다. 교육목표는 ‘미래사회에 적응할 유능한 민주시민 육성’이며, 학교장(강일한)의 경영 방침은 ‘더불어 살고, 인화단결하며, 기본생활이 바르게 이루어지는 학교를 만든다’이다. 특색 교육활동으로 졸업 때까지 100권의 도서 읽기를 매일 아침 독서시간을 통해 추진하고 있으며, 영어전용교실의 상시개방과 수업을 통하여 영어와 친숙해지기도 추진하고 있다.
학교축제로 ‘영축제’를 열고 있고, 교지 『영축산』을 발간하고 있다. 2010년 3월 현재, 12학급에 학생 377명, 교직원 28명이다. 2010년 2월 제62회 졸업식을 하였으며, 총 9,876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