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범 ()

무용
인물
해방 이후 한국무용협회 이사장, 국립무용단장, 중앙대학교 무용학과 교수 등을 역임한 무용가.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26년
사망 연도
2007년
출생지
충청북도 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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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해방 이후 한국무용협회 이사장, 국립무용단장, 중앙대학교 무용학과 교수 등을 역임한 무용가.
개설

충청북도 청주 출생. 본명은 송철교(宋喆敎)

생애와 활동사항

17세 때 최승희의 춤을 보고 춤을 배우기 시작했다. 1945년 양정중학교(5년제) 졸업 후 조택원, 박용호에게 워킹발레 중심의 이시이바쿠 기본을 배웠고, 장추화무용연구소에서 조교가 되었다. 장추화에게 모던댄스, 한국무용, 인도춤 등을 배웠고, 이때 모던댄스는 독일의 마리 뷔그만(1886∼1973)의 기본동작들이었다. 한동인에게 발레도 배웠다.

1948년에 장추화의 2회 발표회에서 첫 안무작 「습작」을 발표하여 주목받았으며, 한국전쟁 때 정훈국 소속으로 춤을 추었고, 피난시절 부산과 대구에서 한국무용단 이름으로 다수 공연했다. 서울 환도 후 1953년 첫 발표회를 했고, 1955년 코리아발레단을 결성했다.

1962년 국립무용단 창립시 부단장을 맡았고, 1968년 멕시코올림픽, 1972년 뮌헨올림픽에 파견된 한국민속예술단에서 안무를 했다. 이 시기에 자기 춤의 중심을 한국무용으로 잡았고, 1973년국립무용단과 국립발레단이 분리 재조직되면서 국립무용단장이 되었다. 1992년까지 「은하수」, 「도미부인」 등의 무용극 18편과 다수의 소품을 안무하였다.

송범의 무용극은 대형극장의 극장 시스템에 맞추어, 신무용을 춤의 기본기법으로 하고, 한국의 설화나 고전을 스토리텔링화한 20세기 후반 한국 장막무용극이다. 송범은 전쟁 이후 춤의 유산도 인물도 빈약한 상황에서 20세기 후반 한국춤계를 일궈냈다.

1961년 한국무용협회 이사장에 취임했고, 1972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무용학과 교수로 임명되어 30년간 재직했고, 1983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 되었다.

상훈과 추모

1973년 국민훈장 동백장, 1984년 대한민국예술원상, 2007년 금관문화훈장을 수여받았다.

참고문헌

『나의 춤, 나의 길』(김태원 편, 현대미학사, 2002)
『한국현대무용사의 인물들』(문애령, 눈빛, 2001)
『한국예술사총서 IV-한국연극무용영화사』(대한민국예술원,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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