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시장 ()

경제
지명
서울 동대문(흥인지문)과 동대문역사문화박물관(구 서울운동장) 사이 청계천 변 가까이에 형성된 전국 최대 규모의 의류전문 도매상가.
정의
서울 동대문(흥인지문)과 동대문역사문화박물관(구 서울운동장) 사이 청계천 변 가까이에 형성된 전국 최대 규모의 의류전문 도매상가.
명칭 유래

평화시장이라는 명칭을 가진 시장은 서울을 비롯해서 부산·대구·김천 등지에 있다. 부산 평화시장은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동에, 대구 평화시장은 대구광역시 동구 신암동에, 김천 평화시장은 김천시 평화동에 있다. 서울 평화시장이 ‘평화’시장이 된 것은 북한에서 내려온 상인들이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뜻에서 붙인 이름으로 알려지고 있다.

자연환경

평화시장은 서울의 도심지를 흐르는 청계천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이 시장이 청계천 인근에 자리를 잡게 된 것은 한국전쟁 직후 초창기에 청계천 주변에 형성된 판자촌에서 사업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형성 및 변천

평화시장은 한국전쟁 때 남쪽으로 내려온 북한 피난민들이 청계천 변 판자촌에서 ‘재봉틀’(미싱) 한두 대로 옷을 만들어 판매하던 데서 출발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청계천 변에서 노점상 형태로 의류를 제조·판매한 상인들의 약 60%가 북한에서 내려온 사람들이었다. 그 후 1962년에 오늘날 건물과 유사한 현대식 건물이 들어섰으나 인근에는 여전히 판자촌이 남아 있어 여기로부터 유입된 값싼 노동력을 활용하여 가내수공업 형태의 의류제조업이 영세 업체들을 지탱시켰다. 당시의 열악한 노동조건이 바로 청계피복노조원이었던 전태일의 분신(1970년 11월 13일) 사건을 낳은 배경이 되었다.

현황

원래의 평화시장은 1962년 2월서울 중구 을지로 6가 17번지에 건축된 철근 콘크리트 3층 건물이다. 대지면적은 8,078.6㎡이고, 건물연면적은 24,704.66㎡이다. 상가에는 2,070개의 점포가 있으며, 여기에서 일하는 사람은 자영업자 1,800명을 포함해서 5,300명에 이른다. 상가의 1층에는 수십 개에 이르는 중고서적 가게가 입주해 있었다.

특이한 것은 평화시장의 영업시간이다. 영업시간은 저녁 10시부터 다음 날 오후 6시까지 20시간이다. 평화시장은 원래 도매시장이기 때문에 일반 소비자가 아닌 소매상인을 주 고객으로 한다. 의류소매상들이 저녁시간을 이용해서 물건을 구매하여 다음 날 자신의 가게에 진열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야간에 영업을 한다. 지방의 의류소매상들은 공동으로 봉고차 등을 이용해서 평화시장에 가서 가게에 내놓을 물건을 구입해 온다.

평화시장이 저렴한 가격으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되자, 인근에 ‘평화’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다양한 명칭의 상가들, 즉 신평화시장, 청평화시장, 동평화시장, 남평화시장 등이 들어서게 되었다. 최근에는 두산타워, 밀리오레 등의 고층 의류전문상가건물까지 들어섰다. 이러한 상가들을 통틀어 동대문상가라고 부르는데, 평화시장은 동대문상가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판자촌에서 시작한 평화시장이 모태가 되어 고층 의류전문상가건물을 포함한 동대문상가로의 발전은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압축판이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언더그라운드 여행기: 평화시장, 시드니, 런던을 지나는 내 인생의 디자인 이야기』(박훈규, 안그라픽스, 2005)
『전태일평전』(조영래, 돌베개,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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