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와 출신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몽골 제5차 침입 때인 1253년(고종 40) 춘주(春州)의 문학(文學)으로 있었다. 조효립은 춘주도안찰사(春州道按察使) 박천기(朴天器)를 보좌하며 춘주성(春州城: 鳳儀山城)을 방어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몽골군은 춘주성에 도달하여 성을 여러 겹으로 포위한 후 목책을 2중으로 세웠다. 그리고 참호를 한 길이 넘게 판 후 며칠 동안 계속해서 공격하였다. 싸움이 장기전으로 접어들면서 성 안의 우물과 샘이 모두 마르고 군사들이 극도로 피로에 지쳤다. 이에 성을 지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여 아내와 함께 불에 뛰어들어 산화하였다. 이후 춘주성은 함락되었으며, 몽골군이 춘주성의 주민들을 도륙하여 시체가 산처럼 쌓였다.
조효립은 몽골 헌종(憲宗)의 숙부 야고[也古, 也窟] 대왕이 친히 이끈 몽골군 본대와 맞서 장기간 지연전을 구사함으로써 비록 춘주성이 함락되었더라도 차후 고려의 여러 산성에서 몽골군의 침입에 대항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