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정안(定安). 임부(任溥)는 어려서부터 매우 총명했으며 글을 잘 지었다. 임원후(任元厚)가 사망한 후 의종(毅宗)이 외척을 억제하고자 임원후의 딸이자 인종의 제3비인 공예태후(恭睿太后) 임씨를 심하게 박대하였다. 이 때문에 20살이 될 때까지 관직에 오르지 못했다. 1170년(의종 24) 무신정변이 일어나 명종이 즉위하자 예빈주부(禮賓注簿)에 임명되었다가 합문지후(閤門祗候)로 옮겼으나, 사직하고 과거를 치러 을과(乙科)에 급제했다. 이후 여러 번 승진하여 이부시랑(吏部侍郞)에 올랐다. 임부의 딸은 최충헌(崔忠獻)의 재취부인(再娶夫人)이 되었다. 임부는 이부상서(吏部尙書) 한림학사(翰林學士)로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