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와 출신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일명 이순우(李純祐), 이청(李請)이라고도 한다.
1163년(의종 17년)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충주사록(忠州司錄)에 임명되었다. 명종 초에는 공역승(供驛丞)으로 옮겨 직한림원(直翰林院)을 겸임했는데, 병을 앓고 있던 명종의 어머니 공예태후(恭睿太后) 임씨(任氏)에 대한 기도문을 잘 지었다. 이 일로 명종의 총애를 받아 한림학사(翰林學士)에 올랐다.
1185년(명종 15) 중서사인 지제고(中書舍人知制誥)가 되었다. 1188년(명종 18)에는 팔관회에 사용할 약을 만들기 위해 백성들이 기르는 어미 소를 끌고 와 우유를 짜내는 일을 폐지해 줄 것을 왕에게 요청하여 승낙받았다. 1191년(명종 21) 국자감시(國子監試)를 주관했으며, 국자대사성(國子大司成)까지 승진하였다.
1196년(명종 26) 최충헌(崔忠獻)이 이의민(李義旼)을 제거하고 집권하자 권절평(權節平)·손석(孫碩)·길인(吉仁) 등이 최충헌을 제거하기 위한 모의를 하였는데, 이에 연루되어 죽임을 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