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때 병부낭중(兵部郎中)에 올랐다. 1202년(신종 5) 8월에는 형부원외랑(刑部員外郞) 박인석(朴仁碩)과 함께 경주 등지에서 계속된 농민항쟁을 설득하는 선유사(宣諭使)로 파견되었다. 경주민의 반란은 최충헌정권기 최대의 민란이었으며 ‘신라 부흥’을 표방하고 있는 것으로 인식되어 최충헌정권으로서는 강경진압책과 온건회유책 양자를 모두 구사하여 민심 수습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러나 선유사 송효성 등의 선유는 결국 실패하여 최충헌은 강경진압을 택하였고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1210년(희종 6)에는 금나라에 파견되어 고려 국왕(희종)의 생일을 축하해 준 것에 대해 사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