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효성 ()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 후기에, 병부낭중, 선유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주요 관직
병부낭중
관련 사건
경주민의 반란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고려 후기에, 병부낭중, 선유사 등을 역임한 문신.
생애 및 활동사항

신종 때 병부낭중(兵部郎中)에 올랐다. 1202년(신종 5) 8월에는 형부원외랑(刑部員外郞) 박인석(朴仁碩)과 함께 경주 등지에서 계속된 농민항쟁을 설득하는 선유사(宣諭使)로 파견되었다. 경주민의 반란은 최충헌정권기 최대의 민란이었으며 ‘신라 부흥’을 표방하고 있는 것으로 인식되어 최충헌정권으로서는 강경진압책과 온건회유책 양자를 모두 구사하여 민심 수습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러나 선유사 송효성 등의 선유는 결국 실패하여 최충헌은 강경진압을 택하였고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1210년(희종 6)에는 금나라에 파견되어 고려 국왕(희종)의 생일을 축하해 준 것에 대해 사례하였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고려의 무인정권』(김당택, 국학자료원, 1999)
「최충헌 정권 연구」(김대중, 서강대학교 사학과 박사학위논문, 2003)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