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 출신과 가계 등은 기록에 전하지 않아 자세히 알 수 없다. 1217년(고종 4) 대장군(大將軍)으로서 양광충청도방어사(楊廣忠淸道防禦使)에 임명되었다. 당시 몽고군에게 밀려 고려에 침입한 거란유종(契丹遺種)의 남하를 차단, 지연시키기 위한 방어임무를 수행하였다.
원래 지윤심은 무인집정 최충헌(崔忠獻)이 아끼던 계집종인 동화(桐花)의 남편 최준문(崔俊文)과 가까운 사이였다. 이러한 인간적 유대관계로 인해 지윤심은 상장군(上將軍)까지 승진했고, 최준문을 중심으로 장군 유송절(柳松節), 낭장(郎將) 김덕명(金德明)과 더불어 최충헌을 보좌했었다. 최충헌의 도방원(都房員)으로 추정되는 지윤심 등 네 사람은 최충헌이 사망할 즈음 후계자로 낙점받았던 최우(崔瑀)에 반대하여, 최충헌의 막내 아들 최향(崔珦)을 새로운 집권자로 추대하려 했다. 그러나 김덕명의 배신으로 지윤심은 최우를 지지했던 세력에게 체포되어 먼 섬으로 유배되었다. 이후의 행적은 알려져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