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 출신과 가계 등은 기록에 전하지 않아 자세히 알 수 없다. 최충헌(崔忠獻)의 심복으로 출세하여 장군이 되었는데, 최충헌의 심복이었던 것으로 보아 도방(都房) 무신이었다고 여겨진다. 유송절은 최충헌의 각별한 총애를 받았던 대장군(大將軍) 최준문(崔俊文)과 가까운 사이였으며, 그 이외에도 상장군(上將軍) 지윤심(池允深), 낭장(郎將) 김덕명(金德明) 등과 긴밀한 관계였다.
유송절은 1219년(고종 6) 최충헌이 노환으로 사망할 것으로 보이자, 후계자로 지목받은 최우(崔瑀)에게 숙청당하게 될 것을 우려하여 최준문·지윤심 등과 더불어 최충헌의 막내 아들 최향(崔珦)을 추대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뜻을 같이 하였던 김덕명이 이 사실을 최이에게 몰래 알려줌으로써 최향추대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최우세력에 의해 최준문은 죽임을 당하고 유송절 등은 남해 섬으로 유배되었다.
이후 홍주(洪州)로 귀양간 최향이 반란을 일으키면서 유송절에게 편지를 보내 회유하자 내응하였다. 최향의 반란이 진압되자 유송절은 안찰사(按察使) 전의(全懿)에게 체포되어 처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