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사 ()

단체
1907년 유일선(柳一宣)이 서울에 설립한 수리(數理)전문 사립학교.
이칭
이칭
수리전문학교
정의
1907년 유일선(柳一宣)이 서울에 설립한 수리(數理)전문 사립학교.
연원 및 변천

한국인 동경물리학교 출신의 유일선은 정리사(精理舍)라는 출판사를 열고, 산술 및 수학 관련 교과서를 저술·출판하고 가르쳤다.

전문 정도의 수리 교육을 실시하는 교육기관으로서의 정리사는 조선총독부에서 1910년 5월 작성한 『학사통계』의 「경성부내 사립학교 현상 일반」에 의하면 1906년 11월 설립되었고, 1909년 8월 5일 사립학교로 인가받았다.

기능과 역할

1910년 당시 2명의 교수가 수업 연한 3년의 기한으로 76명의 학생을 가르치고 있었다. 학교의 경영 및 유지는 학생들의 입학금 및 수업료에 의존하였고, 교사(校舍)는 별도로 마련되지 않았다. 수업은 중부 수진동에 있던 사립 융희학교의 교사를 이용하여 야간에 이루어졌다. 교육과정은 전문학교 수준으로 수학이 중심이었으나 심리, 윤리, 논리, 정신과학, 철학, 물리, 화학 등을 가르쳤다.

설립자이자 교장인 유일선은 휘문의숙 숙장으로 지내면서 최초의 수학잡지인 『수리잡지』를 1905년 11월호부터 1906년까지 통권 8호를 발행하였고, 1908년에는 『초등산술교과서』를 (1908)을 저술하는 등 수학계의 초기 저명 인사였고, 또 유일한 수리 전문학교여서 정리사에는 당시 최규동, 주시경, 장지연, 양태승 등이 공부하였다.

국어학자 주시경은 1910년 그의 나이 34세에 정리사에서 수물학을 3년간 공부하고 졸업했다. 또 중동학교 등에서 수학을 가르치고 근대 수학교육자로 자리매김한 최규동도 정리사의 3년간의 수학연구 본과를 졸업하였다. 장지연 역시 주시경 문하에서 배우다 1911년 정리사를 졸업했고, 고창고등보통학교 교장을 역임한 양태승도 1911년 4월 정리사 고등과에 들어가 1년 6개월 동안 수학을 전공하였다.

현황

전문적인 수리 교육을 실시한 사립학교로서 서울에서 1912년까지 운영되었다.

참고문헌

『인물과학사 1』(박성래, 책과함께, 2011)
『한국수학사』(김용운·김용국, 열화당, 1982)
「京城府內 私立學校現狀一斑」(阿部洋, 『日本植民地敎育政策史料集成(朝鮮篇)』67, 龍溪書舍, 1991)
집필자
강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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