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5판형. 126면. 성문각에서 1975년 1월 1일에 발행하였다.
이 시집은 시인의 ‘자서’, 목차, 제1부∼제5부에 걸쳐 총53편의 작품, 이정기(李廷基)의 ‘후기’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시집은 『황홀』과 『선ㆍ공간』이라는 두 권의 개인 시집과 김종삼, 김광림 등과의 공동시집 『본적지』에 이은 문덕수의 네 번째 시집이다. 시인은 ‘자서’에서 자신의 시학을 “환상적 미학”이라고 말하면서 그 환상은 “현실의 가장 중요한 것, 문명사회의 근원적인 것을 상징”한다고 피력하고 있다.
제1부에는 「네 개의 막대기」, 「새벽 바다」 등 8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여기에 실린 시들은 “수평으로 네 개의 막대기가 날아간다/똑 같은 속도로 나란히 열을 지어/때로는 장대처럼 일직으로 이어져/그 중의 하나는 달을 두 쪽으로 쪼개고/그 중의 하나는 지구를 툭툭 치고/그 중의 하나는 꽃밭을 후려 갈기고/그 중의 하나는 사람을 쳐 죽인다”(「네 개의 막대기」)에서 보는 것처럼 사물을 상징화하기도 하고, “많은/태양이/죄그만 공처럼/바다 끝에서 튀어오른다/일제히 쏘아올린 총알이다/짐승처럼/우르르 몰려왔다가는/몰려간다”(「새벽 바다」)에서 보는 것과 같이 자연물에 상상력을 투사하기도 한다.
제2부에는 「원(圓)에 대하여」, 「계단」 등 11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그 중 「원에 대하여」는 “네 품안에 한 알의 씨로 묻혀/너를 닮은 과일로 익고 싶다”거나 “외길로만 뻗는 이 직선을 휘어잡아다오”와 같은 표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도형에 대한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다.
제3부에는 「소묘(素描)」, 「나비의 수난(受難)」 등 12편이 실려 있다. 그 중 「소묘」, 「고속도로」, 「서울 시내버스」, 「육교」, 「한낮의 홍소(哄笑)」 등 5편은 모두 산문체로 되어 있는데, “도시는 빌딩의 숲이다. 빌딩의 계곡이다. 치솟는 빌딩은 탑이 아니라, 차곡차곡 쌓아올린 콩크리트의 서랍이다. 성냥갑처럼 차곡차곡 포개 올린 서랍이다. 사람들은 표본상자 속의 벌레, 그 서랍 속에서 눈을 뜬다”(「소묘」)는 구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문명 비판적 성격을 띠고 있다. 「나비의 수난」은 “비실비실 포도를 가로질러 가는/연두빛 어린 나비,/신(神)이 찢어버린 한 점의 색종이다/느린 시내버스의 옆구리에 부딪힐 듯/날쌔게 몸을 빼는 택시의/그 소용돌이치는 기류 속에 휩쓸려/치솟을 듯이 몸부림을 치다가/간신히 빠져 나온다”는 표현에서 보듯 자연과 문명의 위태로운 공존을 노래하고 있다.
제4부에는 「개미」, 「어떤 징조(徵兆)」 등 11편이 실려 있고, 제5부에는 「개미」, 「만남」 등 11편이 실려 있다. 그 중 「어떤 징조」는 “심술궂은 바람이/강물에 홈을 파면서 달아난다/강물은 두 쪽으로 갈라지듯 하더니/뒤집히면서 바닥을 드러낸다/목이 잘린 소나무 한 그루/사막 위로 걸어간다”와 같이 표현하고 있는데, 이를 두고 이정기는 ‘후기’에서 “현대적 서구문명의 죽음”을 다룬 “예언적” 작품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문덕수의 시적 감각은 철저하게 조형적인 것으로 언급된다. 그는 시라는 문학의 형식이 본질적으로 향유하고 있는 시간성과 음악성의 의미를 공간성과 조형성으로 바꾸어 놓은 실험적 작업을 시도하고 있으며, 그것은 일종의 모더니즘의 변주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이 시집에서는 현실 상황을 상징적으로 반영한 내면세계의 미학을 추구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