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 중엽의 유적으로, 삼수읍의 삼수천과 관흥천이 합수되는 삼각지점의 언덕 위에 축성된 석성이다. 북한에서는 국가지정문화재 보존급 제520호로 지정해 놓고 있다.
삼수군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과 마주하고 있다. 본래 갑산군의 성보로 시작되었으며 1441년 만호가 설치되고 그 후 군, 도호부 등으로 승격되었다가 1464년 과거의 신파에서 현 위치로 옮겨오면서 다시 군으로 되었다. 당시는 압록강행성과 두만강행성을 비롯하여 평안도의 추파구자(장강)와 구성, 함경도의 북청, 고원 그리고 그 이북 지역에 성들을 많이 쌓아 북방 방위를 강화하던 시기였다. 삼수읍성은 이 무렵에 쌓아졌으며, 구한말인 1907년 말에는 홍범도 의병 부대가 일본군과 치열한 격전(삼수성전투)을 벌여 심대한 타격을 입히는 등 선열들이 반침략 투쟁을 전개했던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이 성은 평면이 대체로 남북으로 긴 타원형이다. 동쪽 성벽의 대부분은 거의 직선으로 축조되었으며 성의 둘레는 약 1,150m이다. 현재 성의 서쪽 벽 70m구간과 남쪽 벽 50m구간이 1~1.5m 높이로 남아있다. 『증보문헌비고』에는 191개의 성가퀴와 8개의 포루, 3개의 우물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가까운 곳에 나난보를 비롯한 여러 성보들이 있어 서로 연결된 방위진을 펼치고 있었다.
성의 남쪽에는 주작문이, 동쪽에는 동문이 있는데, 동문은 조일문이라고도 하며 지금도 잘 보존 관리되고 있다. 동문은 다락채식(누각식) 2층문으로 문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이다. 기둥은 1, 2층을 이어 세운 배흘림기둥이며 자연석의 주춧돌 위에 세워졌다. 기둥 위에는 2익공식 두공을 얹었으며 그 위에 합각지붕을 이었다. 두공의 제공은 소혀형이며 두공사이에 끼운 화반은 고사리무늬로 되었다. 2층 다락은 그 밑으로 사람이 드나들 수 있도록 높게 만들었다. 문에는 화려한 단청을 하였다.
삼수읍성은 축성 당시의 성곽 제도와 건축술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