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음사현암은 황해금강(黃海金剛)으로 불리는 장수산의 층암절벽 위에 세워져 있으며, 현암의 동쪽 아래에는 층암절벽 사이로 장수산의 절경인 석동12곡(石洞十二曲)이 있다. 묘음사현암에서 동쪽으로 약 4㎞ 떨어진 곳에 묘음사가 있다.
묘음사현암의 창건 시기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나, 1701년(숙종 27)에 조성된 『묘음사사적기(妙音寺事蹟記)』에는 “923년(신라 경명왕 7)에 승려 이암(李巖)이 ‘광조사(廣照寺)’라는 절을 처음 세웠고, 이암이 말년에 현암에 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어 현암의 창건 시기를 통일신라로 추정하고 있다. 묘음사현암은 여러 차례 중건되었으며,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조선 중기에 중축된 것이다.
묘음사현암은 묘음사(妙陰寺)에 딸린 암자로서 높이 120m의 암벽 위에 매달아놓은 듯하여 ‘다람절’이라고도 한다. 묘음사현암은 정면 6칸(11.2m), 측면 3칸(6.35m)의 겹처마 합각집이며, 기둥은 높이 솟은 바위를 기단으로 삼아 주춧돌을 놓은 다음 그 위에 세운 흘림기둥이다. 건물이 안정되어 보이도록 기둥들을 안쪽으로 조금씩 기울여 세웠다. 기둥 위에는 주두가 있으며, 여러 겹의 장여로 기둥과 주두, 제공이 물려있다.
두공은 2익공이며, 모서리두공 밑에는 네모모양의 나무토막을 달아 장식하였다. 지붕은 겹처마 합각식이며 용마루, 추녀마루, 처마, 지붕면에 이르기까지 완만하게 휨을 주었다. 마루도리는 연꽃무늬 화반대공이 떠받치고 있으며, 대공의 좌우에는 활개가 있다. 소란반자에는 연꽃무늬가 그려져 있으며, 건물은 모루단청으로 장식하였다.
묘음사현암은 강원도 금강산 만폭동의 보덕암과 더불어 층암절벽 위에 세운 보기 드문 암자이다. 묘음사현암에는 고려시대 형식을 띤 독특한 형태의 소로(小櫨)가 몇 개 있으며, 건물 후면에 툇마루가 배치된 점도 특이하다.
묘음사현암은 10세기 이전 건축술과 고려, 조선 중기의 건축양식을 보여주는 문화유산으로서 민족문화연구에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묘음사현암은 북한의 국보급 제81호로 지정·관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