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왕사는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따르면, 조선 태조 때 세워졌고, 양로사와 함께 설봉산에 있다고 하였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부 서쪽 4리 설봉산에 있으며 태조가 잠저(潛邸)할 시에 신승인 무학(無學)이 석왕의 꿈을 꾸어 석왕사라고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석왕사는 고려 말에 창건된 후 조선 태조 때에는 보광전을 비롯하여 응진당, 명부전, 나한전, 대장전, 수군당, 천진당, 용비루, 황매당, 종루 등 50여 채의 크고 작은 건물들이 세워졌던 큰 사찰이었다. 석왕사호지문은 한국전쟁 때 소실되었다가, 전후에 복구하였다.
석왕사 호지문은 1392년(태조 1)에 석왕사 대웅전 앞에 세워진 문이다. 호지문은 정면 3칸(10.2m), 측면 2칸(5.06m)이며, 박공지붕을 이은 5포식 건물이다. 가운데 칸은 넓게 하여 문길로 사용하였고, 좌우측 칸은 벽으로 막아 그 안에 사천왕상을 두었다. 단청은 간략하게 묘사한 모루단청으로 장식되어 있다.
석왕사 호지문의 두공은 포의 수, 짧고 간결하게 다듬은 제공, 첨차의 밑면가공 등에서 1386년에 지은 석왕사 응진당의 두공과 거의 같은 것으로서 초기 다포(多包)의 특성이 잘 나타나 있다.
석왕사 호지문은 응진당 다음으로 오래된 건물로서 고려 말∼조선 초기 사찰 건축 양식과 건축술을 연구하는데 가치가 있는 문화유산이다. 북한의 국보급 제176호로 보존·관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