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불사사적비는 1727년(영조 3) 성불사 앞에 세워진 것으로 서산대사의 6세(世) 문인(門人)인 수월(水月)재현(載玄)이 병서(竝序)와 전액(篆額)을 썼다. 사적비에는 성불사의 연혁이 기록되어 있다. 현재 탁본(拓本)은 전해지지 않는다.
성불사사적비의 내용을 보면, 성불사는 정방산(正方山)에 있으며, ‘성품을 회복한다(復姓)’는 의미로 성불(成佛)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성불사는 898년(효공왕 2)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하였고, 뒤이어 승려 나옹(懶翁)이 흥기하여 절을 크게 지었으며, 단청을 하고, 소나무를 심는 등 유적(遺迹)을 일으켰다고 한다. 1646년(인조 24)에 극락전에 원인 모를 화재가 발생하여 동쪽 건물이 무너졌고, 1650년(효종 1)에는 언택(彦澤)이 대웅전을 보수하여 전(殿)의 형세와 규모가 이전과는 달라졌으며, 뒤이어 선방(禪房)도 만들어졌다고 한다. 1684년(숙종 10)에는 도행(道行)이 두루마리 그림 족자 6개를 가져오고, 곧이어 무게 400근(240㎏)의 대종(大鐘) 하나를 만들었는데, 이 물건들이 절의 구경거리라고 한다. 1709년(숙종 35)에는 필형(弼浻)과 육갑(六甲)이 명부상(冥府像)을 만들고, 1711년(숙종 37)에는 당(堂)을 건립하고 안녕을 빌었으며, 산중의 촌민(村民)들이 양전(良田)을 절에 바쳤다고 기록되어 있다.
성불사사적비는 성불사의 연혁과 당시 상황 등이 기록된 귀중한 역사유적으로서 북한의 보존급 제1127호로 보존·관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