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화사는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창건된 사찰로서 1980년에 복구한 법당과 사무실 2동을 갖추고 있는 시내 포교당이다. 『태고사사법(太古寺寺法)』에 따르면, 용화사는 평안남도 안주군 안주면 미상리의 용미산에 있었고, 일제강점기 31본산(三十一本山) 체제 하에서는 법흥사의 말사였다고 한다. 용화사는 일제강점기 초 많은 땅과 임야를 소유할 정도로 융성하였으며, 대성산 광법사(廣法寺)가 중창되기 전에는 외국 불교계 인사들이 자주 들렀던 절이었다.
용화사는 평양시 모란봉구역 개선동의 고노골에 조성된 개선청년공원 안에 있다. 용화사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겹처마합각집이다. 포식 두공을 사용하였으며, 단청은 장식하지 않았다. 대웅전 안에는 불단 위에 석가여래(釋迦如來)를 중심으로 관세음보살상과 세지보살상이 나란히 있다. 불상의 뒷벽에는 후불탱화가 걸려 있으며, 천장은 우물반자이다. 용화사에는 홍복사6각7층탑과 영명사불감이 옮겨져 있다.
홍복사6각7층탑(弘福寺六角七層塔)은 원래 홍복사터(평양시 평천구역 평천동)에 있던 고려 중기 이후의 석탑이다. 이 석탑은 일제강점기인 1933년에 금수산 을밀대 부근으로 옮겨졌다가, 이후 용화사 앞뜰에 세워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영명사불감(永明寺仏龕)은 고구려시기의 석조불감으로 모란봉 청류벽 위의 영명사터(평양시 중구역)에 있던 것을 옮겨놓은 것이다.
용화사 대웅전은 지붕의 옹색한 모습, 정면 문살의 형태, 건물에 단청 장식이 없다는 점 등을 볼 때 일제강점기에 형식적으로 지어 놓은 듯한 느낌을 준다.
용화사는 일제강점기 사찰의 건축양식과 건축술을 보여주는 문화유산이다. 북한의 국보급 제163호로 지정·관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