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에 70년대동인회에서 출간된 강은교의 첫 시집. 300부 한정판으로 출간하였다.
강은교는 1968년에 『사상계』 신인상으로 등단하였다. 그 후 2, 3년간 집중적으로 시를 써서 첫 시집을 상재하게 된다.
임정남, 정희성, 윤후명, 강은교 등이 참여한 70년대동인회에서 출간하였다. 시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자전’ 연작시를 비롯한 초기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이 시집은 제목에서 나타나듯이 존재론적 고독과 허무를 집중적인 주제로 삼았다. 시집 제목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허무의 시인'으로 명명하게 되는 첫 출발점을 이룬다. 그의 초기 시편들을 두고 허무와 고독이 깊이 침윤된 존재 탐구의 세계로 해석하는 관행은 이 시집으로부터 발원한 것이다. 그는 스스로 그 서문에서 “내 서투른 허무의 말들을” 읽어 달라고 요구했는데, 그만큼 그는 이 시집에서 ‘허무’라는 개념에 풍부하고도 개성적인 시적 상상력을 부여하였고, 나아가 ‘고독’이나 ‘사랑’에 대해서도 신선하고 충격적인 시적 재해석을 시도하였다. "길이 멎고/앞선 강이 끊어진다./몇 집이 공터에서 헤어져/바깥바다로 끌려가고/마지막으로/우리는 허공에 도착한다."는 「여행가」에서 시인은 그 어느 곳에도 이르지 못하는 허공을 상상하였다. 「비리데기의 여행 노래」도 존재론적인 허무와 어둠을 노래하였는데, "만리길 밖은/베옷 구기는 소리로 어지럽고/그러나 나는 시냇가에/끝가지 살과 뼈로 살아 있다."(「비리데기의 여행 노래」-삼곡·사랑)에서 그는 살과 뼈로 존재하면서 상처를 살아가는 삶을 상상한 바 있다. 그래서 이 시집은 허무와 생명 의식을 통해 삶의 근원적 존재 원리를 탐색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거기에 작고 하찮은 사물들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보태면 강은교 초기시를 설명하는 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집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바라본 존재론적 심연을 내용으로 삼고 있다. 존재의 근원과 비의를 찾기 위해 시인은 어둡고 깊은 허무의 세계로 침잠한다. 삶과 죽음의 이미지가 어지럽게 교차하는 이 시집은 뿌리에서 나서 뿌리로 돌아가는 생명의 원리와 재생의 역동적인 여정을 그려낸다. 허무의 뿌리까지 내려간 시인은 생과 사가 맞물려 순환하는 드넓은 생명의 장을 발견하며 이를 보편적인 운명과 생명의 원리로 파악하게 된다. 그래서 이 시집은 죽음과 생명의 신비를 동시에 탐색하고 존재론적인 허무와 어둠을 형상화하는 강은교 시의 첫 출발점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