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도 해주 출신의 서양화가로 일본에서 고학으로 카와바타화학교(川端畵學校)에서 공부하였고, 귀국후에는 황해도 지역에서 도화 강사로 활동하며 「부두노동자의 식사」(1936), 「아리랑」(1937) 등의 작품을 남겼다. 해방후에는 북조선미술가동맹 총무부장 등을 역임하였다.
1913년 황해도 해주 출신. 일본에 건너가 고학으로 카와바타화학교(川端畵學校)에서 공부하였고, 건강이 악화되어 귀국한 후에는 황해도 지역에서 도화강사로 활동하며 개인전, 동인전을 개최하였고, 「부두노동자의 식사」(1936), 「아리랑」(1937) 등의 작품을 남겼다. 해방후에는 북조선미술동맹 해주시 위원장, 북조선미술가동맹 총무부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바탕을 두고 북한 농민들의 삶을 다룬 「개수답(改修畓)에서」(1957년), 「유쾌한 귀로」(1959년) 등의 작품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