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두천이담농악은 다음과 같은 판제로 구성된다. 1) 입장굿, 2) 판굿, 3) 개인놀이, 4) 맺음. 판굿은 칠채(오방진) - 일채 – 난타 – 두줄 벅구놀이 한줄백이 벅구놀이 – 사통백이 – 일채 – 좌우치기.
“이담”은 동두천의 옛이름이다. 이담농악은 동두천시 지행동 소재의 1,000년 역사를 가진 은행나무 밑에서 마을 농사일을 위한 품앗이 주민 대동굿을 벌여 마을의 안녕과 액운을 떨쳐내고 화합과 단합을 위하여 행해졌다고 한다. 또한 4월 초파일부터 5월 단오까지 마을의 안녕과 주민의 액을 막기 위한 마을굿을 거행했다고 한다. 이외에도 호미걸이를 하면 마을마다 농악대가 농악을 치며 하루를 보냈다고 한다. 해방 이후에 양주군에서 각 면별로 농악경진대회를 개최했는데, 이담농악은 이 당시에 형성되었다. 남사당패 출신의 상쇠로 송내농악(현 동두천시 송내동)을 이끌었던 조임득과 3무동 위에서 상쇠북상놀이로 유명했던 행단농악(현 동두천시 지행동)의 이창인 등이 이담농악을 발전시켰다.
1960년대 이후 점차 소멸되어가던 동두천 농악은 1985년 향토사학자 조규진이 조사하기 시작하여 1995년 동두천시 문화원에서 ‘이담농악’ 전승회가 구성되었다. 1997년 문화원에서 ‘우리소리 한마당’이라는 제명으로 이담농악이 재현되었다. 1999년 경기도 민속경연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했다. 2007년에는 동두천시 시립이담풍물단이 창단되었다.
다른 지역 농악에서는 보기 힘든 제금을 편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