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2년 7월 홍긍섭(洪肯爕)ㆍ한귀호(韓龜鎬) 등이 조선정악전습소 졸업생과 일반음악가[閑散音樂家]들을 대상으로 조직하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음악교육기관이었던 조양구락부(調陽俱樂部)와 그의 후신 조선정악전습소(朝鮮正樂傳習所) 출신 음악가들이 ‘구락부(俱樂部)’ 즉 동호회를 만들어서 정악을 연주하던 모임이다. 1928∼1934년에 콜럼비아 레코드에서 여러 장의 줄풍류와 민요를 취입한 것으로 보아 1930년대에도 활동하였다.
조선정악전습소와 결별한 홍긍섭이 조선정악전습소의 운영을 표본으로 삼아 만든 연주단체이다. 단체 설립을 주도했던 홍긍섭은 조양구락부와 조선정악전습소에서 소감(所監)과 총무, 평의원, 연구위원 등을 지냈고, 한귀호는 조선정악전습소에서 거문고를 배웠던 음악가이다. 두 단체의 성격이나 일부 회원들은 두 단체에서 두루 활동하기도 하여 혼동이 되지만 정악구락부는 조선정악전습소에서 분파된 별개의 단체이다.
단체가 오랜 기간 동안 유지됐음에도 외부활동을 하지 않아 구체적인 활동내용은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 하지만 다년간 음반활동을 한 점으로 보면 모임이 잘 유지되고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1928ㆍ1929ㆍ1930ㆍ1934년에 각각 음반이 취입되었거나 취입하였다는 광고를 볼 수 있다.
취입한 음악은 정악 줄풍류 중 상령산ㆍ세령산ㆍ타령ㆍ양청도드리, 민요는 경기민요 방아타령ㆍ양산도ㆍ이팔가 등으로 이 음악들은 현재 유성기음반에 남아있다. 이때의 연주자는 김상순(양금)ㆍ조이순(현금)ㆍ조동석(단소)ㆍ김계선(대금)ㆍ지용구(해금)ㆍ김경식(장고) 등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두 단체가 풍류방 성격의 모임으로 위축되었지만 꾸준한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었던 결과이다.
1933년 3월에 충북 음성(陰城)에서 김두원(金斗源) 등이 정악구락부를 조직하고 단체 이름을 ‘음성정악구락부’라고 하였다. 일반풍류를 구비하여 놓고 일반 지원자에게 무료로 가르친다고 한 점을 보면 정악동호인 모임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정악구락부라는 명칭은 정악연주단체를 이르는 용어로도 쓰였다.
애호가들에 의해 유지되던 정악으로 음악계에 진출을 시도하였고, 정악계 음악인들에게 활동 기반을 제공해 주었다. 단체에서 발매한 정악 음반은 희귀한 고풍의 정악연주를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