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흥 군자봉 성황제 ( )

민간신앙
의례·행사
매년 10월 3일 시흥시와 안산시의 경계에 위치한 군자봉 성황단에서 김부대왕을 주신으로 모시고 행하는 마을굿. 도당굿.
정의
매년 10월 3일 시흥시와 안산시의 경계에 위치한 군자봉 성황단에서 김부대왕을 주신으로 모시고 행하는 마을굿. 도당굿.
개설

군자봉(198.4m)은 시흥시 군자동과 안산시 선부동의 경계에 위치한 산으로 해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현재 경기도 남부 서해안 지역에서 무속인들의 발길이 가장 잦은 산으로 주위에는 여러 개의 굿당들이 들어서 있다.

군자봉에는 군사산성(君子山城)터와 함께 성황단이 남아 있다. 성황단은 산성이나 고을 관아의 주위에 나타나는데, 고을이나 성안[城內]의 안녕을 빌기 위해서 수령이 백성들과 더불어위무(慰撫)했던 곳이다.

군자봉에는 신라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과 부인 안씨 그리고 장모 홍씨를 성황신으로 모신다고 전하는데, 그 역사적 진실은 단언할 수 없으며, 학자들에 따라 다양한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다.

연원 및 변천

『시흥군지(始興郡誌)』에는 경순왕비 안씨가 난을 피하여 군자봉 아래에서 살다가 왕의 승하 소식을 듣고 군자봉 정상에 초막을 짓고 3년 동안 남편의 명복을 빌은 적이 있으며, 그 뒤 주민들이 성황당을 짓고 경순왕의 위패를 모셨다는 내용이 소개되어 있다. 이와 달리 군자봉 성황당은 김부대왕을 모신 것이 아니라 안산군(安山君)으로 봉해진 안산 김씨의 중시조 김은부(金殷傅, ?~1017)를 모셨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학자도 있다.

김부대왕과 관련된 당이 안산에는 몇 군데 나타난다. 즉, 성곡동 잿머리나 우음도 음섬, 그리고 수원 평동 벌말에서도 모셔지는데, 김부대왕이 유가를 돌 때 잠시 머무는 작은당이라고 전한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고려의 서희(徐熙)가 경순왕의 영정과 안씨부인의 소원당을 지었다는 것으로 보아 이 곳의 역사는 고려 초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경순왕의 이름이 ‘김부’인데 와전되었는지 군자동 주위의 사람들은 ‘금부대왕’이라고 흔히 부른다. 군자봉에 모셔진 신격에 대해 다양한 가설이 존재하지만, 오늘날 지역주민들에게는 김부대왕으로 모셔지고 있다.

한편, 안산은 과거 중국의 사신이 왕래하던 길로 중국사신을 맞이한 일행이 군자봉 앞을 지나갈 때 말발굽이 떨어지지 않아 말에서 내리고 가는 경우도 있었다고 전한다. 또한, 경기도도당굿 인간문화재인 오수복에 따르면, “군자봉에는 일제시대 때까지 당집이 있었지만, 일본인들이 당집에 불을 놓았으며, 이곳에서 굿을 하면 무당들을 나무에 거꾸로 매달아 괴롭혔기 때문에 굿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 후, 산 아래의 구지정 마을에 사는 김순덕의 외조모가 김부대왕을 자신의 신당에 모셔와 매년 음력 10월 3일에 굿을 해왔다.”고 한다.

현재는 김순덕이 모친 김부전(김부전은 어머니 곽명월에게서 이어받았음)의 가업을 이어받아 김부대왕을 모시고 있으며, 군자성황제보존회를 구성하여 전승시키고 있다. 군자봉성황제는 2002년 시흥시 향토문화유적으로 지정되었다.

행사내용

군자봉에서 하는 굿은 경기도 산이(세습무 화랭이)들이 하는 도당굿이며, 굿을 하기 전에 먼저 유교식 제례를 지낸다. 이곳은 경기도도당굿 보유자인 오수복을 비롯해 그의 스승인 이용우 일행이 다니던 곳이다. 현재는 구준물(九之井)마을에 사는 이순덕이 당주가 되어 매년 10월 3일 굿을 한다.

굿의 절차는 오전에 주민들과 무당일행들이 군자봉으로 오르는데, 산으로 올라갈 때 주민들이 풍물을 치며 신대를 인도하여 간다. 신대가 산 위에 당도하면 제당(祭堂) 주위에 세워놓고 산제(山祭)를 지낸다. 제단 앞에 음식을 차려놓은 후, 축문을 읽고 제를 지낸다. 그리고 성황맞이 굿을 한 거리하고, 신대를 들고 제당 주위를 한 바퀴 돌고 난 후 마을로 내려온다. 이어서 주민들과 무당일행은 굿청이 마련된 당주집 신당에서 본격적으로 굿을 시작한다. 한편 신대가 산에서 내려오면, 과거에는 안산 시내를 3개월 동안 돌아다니다가 삼월 삼짇날이 되면 산으로 올려 보냈다고 한다.

2003년에 조사된 군자봉 성황제의 절차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아침에 제물을 진설한 후, 당기(신대)에 옷을 입혀 앞세운다.주민과 악사 및 무당 일행은 군자봉에 오른다. 산에 도착하면 부정풀이-산신맞이-신장거리-대감거리-뒷전을 하고, 이어서 산에서 내려오면 맞이굿을 한다.

맞이굿은 전에 없었던 것을 오수복이 만들어 넣은 제의라고 한다. 산에서 내려온 성황신인 경순왕을 바로 굿당 안으로 모실 수 없기 때문에 옥수를 담은 물동이를 놓고 안씨 부인과 홍씨 마마가 잘 오셨다고 인사하고 굿당으로 모셔드리는 것이다.

이어서 만신의 신당 안에서 부정거리-산거리-신장·군웅거리-단골맞이굿-제석거리-호구·대감거리-대안주(승전거리-장군거리-별상거리-대감거리)-조상거리-성주·창부거리-뒷전 순으로 진행된다.

의의와 평가

군자봉은 이 지역사회에서 모셔지는 성황당이 있던 곳으로 이곳에서 행해지는 굿은 강릉단오제와 같은 마을굿이다. 물론 오늘날은 구준물마을 주민들이 참여하는 정도로 축소되었으나, 그 유래는 오래되었다. 2015년 경기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한국 대왕신앙의 역사와 현장』(신종원, 일지사, 2008)
『巫 굿과 음식』(국립문화재연구소, 2005)
『전국의 기도터와 굿당』1(김덕묵, 한국민속기록보존소, 2003)
『시흥군지』(시흥군지편찬위원회 편, 시흥군지편찬위원회, 1988)
집필자
김덕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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