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경제기술원조협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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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2월 8일 한국정부와 미국정부 사이에 체결된 경제 · 기술 원조협정.
이칭
이칭
대한민국 정부와 미합중국 정부간의 경제기술원조협정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한미경제기술원조협정은 1961년 2월 8일 한국정부와 미국정부 사이에 체결된 경제·기술 원조협정이다. 협정문에서는 원조가 한국의 방위 유지 달성이 기본요건임을 공동으로 재확인하고 있다. 그러나 지나치게 미국 위주로 구성되어 주권국가의 체면을 손상시킨다는 논란이 확산되어 반대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 내용은 미국의 관계법령과 규칙에 따를 것, 미국 대표의 시찰과 검토에 제한 없음, 관세 면제, 미국 정부가 원할 경우 종료 등이다. 논란이 가열되자 한국 주권의 완전 존중과 양국의 협의에 의한 면세조항의 세목 결정 등의 양해사항을 첨부하는 조건으로 동의안이 통과되었다.

키워드
정의
1961년 2월 8일 한국정부와 미국정부 사이에 체결된 경제 · 기술 원조협정.
개설

1961년 2월 8일 한국대표 정일형(鄭一亨) 외무부장관과 미국대표 매카나기(Walter P. McConaughy) 주한미대사 사이의 각서 교환으로 체결되어 2월 28일 발효된 협정이다. 정식 명칭은 ‘대한민국 정부와 미합중국 정부간의 경제기술원조협정’이며, ‘한미경제협정’으로 줄여 사용되기도 한다. 미국정부가 한국정부에 공여하는 경제 및 기술원조에 적용될 양해 사항을 규정한 협정으로 전문 8항과 합의의사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협정은 1948년 12월 10일 체결된 ‘대한민국 및 미합중국간의 원조협정’, 1952년 5월 24일에 체결된 ‘대한민국과 통합사령부의 자격으로 행동하는 미합중중국간의 경제조정에 관한 협정(일명 마이어협정)’, 1953년 12월 14일 체결된 ‘대한민국과 미합중국간의 경제재건과 재정안정계획을 위한 합동경제위원회의 협약’ 및 그 부록 등을 대체하는 형식으로 합의된 조약이다.

내용

한미경제기술원조협정문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한국정부와 미국정부는 경제기술 및 이에 관련된 원조가 국제연합의 제(諸)목적 및 원칙에 따라 한국의 방위를 유지하는 지상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기본요건임을 공동으로 재확인한다. 둘째, 원조는 한국정부가 요청하고 미국정부가 지명한 기관의 대표가 승인할 경우와 양국 정부에 의하여 지명된 기타 대표에 의하여 요청되고 승인될 경우에 제공되며, 모든 원조 제공은 미국의 관계법령과 규칙에 따를 것이다.

셋째, 한국정부는 원조의 효율적인 사용을 보장하기 위하여 적절한 조치를 취한다. 구매는 합리적인 가격과 조건하에 이루어질 수 있도록 미국정부와 협조하며, 미국 대표가 본 협정에 의한 계획, 사업 및 이에 관한 기록을 제약없이 계속 시찰하고 검토함을 허용하며, 미국정부가 사업의 성질과 범위를 결정한다. 그리고 한국정부는 이미 제공되거나 구상 중인 원조의 효율성을 평가하는데 필요한 관련 정보를 미국정부에 제공한다.

넷째, 미국원조사절단의 활동에 최대한의 협조와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 원조사절단과 그 구성원은 미국 외교사절의 일부로 간주하여 경제적 · 정치적 외교특권을 부여해야 한다. 다섯째, 미국의 원조사업과 관련하여 도입하는 자동차를 포함한 모든 물자에 대해 한국정부는 내국세와 관세를 면제해야 한다. 여섯째, 이 협정에 규정된 원조계획은 미국정부가 원조의 계속이 필요하지 않거나 희망되지 않는다고 결정할 경우에 미국정부에 의해서 종료된다.

경과 및 결과

이 협정과 관련해 국내에서는 그 내용이 지나치게 미국 위주로 구성되어 주권국가의 체면을 손상시킨다는 논란이 확산되어 반대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국회에서는 야당이 “남한을 지배하겠다는 미국의 책략 가운데 일부”라고 규탄하고 외무부장관의 사퇴요구를 제기했다. 또한 학생들은 이 협정이 경제적 예속화와 내정간섭을 강요하는 ‘편파적이고 불평등한’ 조약이라고 규정하고 집회와 시위를 전개하였다.

논란이 가열되자 협정의 서명자인 주한미대사 매카나기는 2월 16일 정일형 외무부장관에게 미국은 대한민국의 독립주권을 옹호하기 위한 확고한 공약을 하고 있으며, 대한민국의 자립과 경제 복지를 증진시킬 결의를 하고 있다는 내용의 외교 공한을 전달하였다. 결국 1961년 2월 말에 국회는 다음과 같은 양해사항을 첨부하는 조건으로 동의안을 통과시켰다.

첫째, ‘한국 주권의 완전 존중’에 관한 주한미대사의 공한에 표시된 원칙과 정신에 위배된 적용이나 해석을 할 수 없다. 둘째, 외교특권 부여를 요청할 관리수는 양국 정부 협의하에 정한다. 셋째, 면세조항의 적용범위와 대상자, 국적 등 세목은 양국정부의 합의사항으로 한다는 것이었다.

국회에서는 이러한 양해사항이 구속력을 가질 수 있는지, 미국이 이를 수락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이 논의되었으나 명백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다만 장면 총리로부터 국회 양해사항을 포함하여 미국정부에 통고할 것이며 그러면 미국정부로서도 생각이 있지 않겠냐는 답변을 듣는 선에서 마무리 되었고, 국회는 양해사항을 첨부한 조건부 동의안을 통과시켰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생들이 중심이 된 집회와 시위가 협정이 체결된 후 3주 동안 계속되었다. 학생들은 미국대사관 앞에서 협정철회를 요구했고, 시민들은 ‘장면정부 타도’를 외치며 시가행진을 벌였다. 그러나 이 투쟁은 혁신정당과 학생이 주축이 되어 이루어졌을 뿐 반미적 색채로 인해 광범위한 국민대중의 호응을 얻는 데는 실패하였다.

참고문헌

『한국근현대사 사전』(한국사사전편찬회 편, 1990)
『한국경제와 미국원조』(홍성유, 박영사, 1962)
「조약의 체결·비준에 대한 국회의 조건부 동의」(정인섭,『법학』제49권 제3호, 2008)
집필자
박동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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