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수는 1941年 1月 오사카(大阪)에서 고학을 하면서 항일 민족의식을 갖고 조선독립을 갈구하던 중에 동지를 획득한다. 그는 “히틀러는 노력의 결과 민족의 결합을 완성하여 대독일을 건설하였다. 우리 역시 조선민족을 결합하여 현재의 피압박 조선민족을 해방하는 조선독립운동에 매진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항일운동에 참가할 것을 선동했다.
그리고 장덕수는『조선근대정치사(朝鮮近代政治史)』를 비롯한 각종 혁명사를 교재로 하여 조선혁명의 연구에 몰두하는 한편 동지의 결집에 노력했다.
마침내 1942년 8월 중순 조선독립청년당으로 당명을 결정했다. 이때, 서약, 당칙, 기구를 기초하고 결정했다. 먼저 서약과 당칙은 다음과 같다.
서약 : 제일, 우리들은 조선독립을 위해, 조선민족의 행복을 위해 생명을 바친다. 제이, 우리들은 동지 장덕수로서 조선독립청년당 당령(黨領)으로 하고 그의 지휘에 따른다. 제삼, 조선독립청년당 당칙은 절대로 이를 준법한다.
당칙 : 제1조 당원은 절대로 당령의 명에 복종할 것. 제2조 당원은 당령의 허가없이 탈당할 수 없다. 제3조 당원은 매월 당비 돈 30전(錢) 정도를 납부할 것. 제4조 입당자는 당령의 허가를 얻어야 한다. 그리고 입당비 50전을 납부할 것. 제5조 당칙 제1조 및 제2조에 위반한 자는 엄벌에 처함. 그 판결은 당원의 의견을 구하여 당령이 이를 결정한다. 제6조 당원으로서 그의 본분을 망각 배신적 행위를 하여 당운동을 방해하거나 하려고 하는 자는 최고의 벌에 처한다.
조직에 가담했던 구성원들은 직장, 학교에서도 항상 동지 획득에 노력함으로써 우유배달그룹, 신문배달그룹 등의 결성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니시지마제2공업학교(西島第二工業學校), 간사이공업학교(關西工業學校), 오사카공업학교(大阪工業學校) 등지에 학생그룹을 조직했다. 이에 기초하여 조선독립을 위해 과감한 운동을 전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