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활동한 재일한인 미술가로, 1950년대 일본 화단에서 재일 한인들이 처한 궁핍한 삶과 민족적 현실을 표현한 작품으로 주목받았던 리얼리즘 작가이다.
1928년 경상남도 진주에서 태어나 1947년 진주사범학교를 졸업했다. 재학 당시 프롤레타리아 미술에 관심을 갖고 있었고 진주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하면서 남로당에 가입하여 정치활동에도 투신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로당에 대한 정치적인 탄압을 피해 1948년 2월 부산으로 도피한 뒤 친구의 소개로 토성국민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그러나 당시 남한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해 학교에서 인공기를 게양하는 사건을 주도하면서 다시 도피생활을 시작했다. 같은 해 일본으로 밀항에 성공하여 도쿄 에다가와죠[技川町]의 조선인 부락에 정착했다.
도일 이후 막노동으로 생활을 유지하면서 무사시노미술대학[武藏野美術大學]에 잠시 다니기도 했다. 사회주의 계열의 전람회인 일본 앙데팡당전에 참여하여 작품을 출품했던 그는 1953년부터 화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같은 해 청년미술가연합을 중심으로 한 ‘닛뽄전’에 참여하였고 타케미야화랑[竹見屋画廊]에서 첫 개인전이 개최되었으며 재일조선미술협회에 회원으로 참여했다. 이 시기 조양규는 6.25전쟁으로 민족의 비극적 삶을 소재로 한 「조선에 평화를」(1953), 하층 노동자들의 삶을 표현한 「창고」, 「맨홀」 연작을 발표하면서 1950년대 일본 리얼리즘 화단에서 주목을 받았다. 1959년 무라마츠화랑[村松畵廊]에서 두 번째의 개인전을 개최했으나 이듬해 북송선을 타고 월북했다. 평양에 도착한 이후 체코슬로바키아에 1년간 유학을 다녀온 것 이외에 북한에서의 활동은 알려진 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