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진 ()

연극
인물
해방 이후 「사랑방손님과 어머니」(, 「자유만세」, 「처녀 별」 등에 출연한 배우.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여성
출생 연도
1918년 9월 6일
사망 연도
2003년 7월 16일
출생지
서울 종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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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해방 이후 「사랑방손님과 어머니」(, 「자유만세」, 「처녀 별」 등에 출연한 배우.
생애 및 활동사항

1918년 9월, 서울 종로에서 8남매 중 5녀로 태어나 효창소학교를 다녔고, 졸업 후에는 경성전기회사에 사원으로 취직했다. 어려서부터 영화를 보러 다녔던 그는 영화배우를 동경했고, 특히 복혜숙이 주연한 「낙화유수」(이구영 감독, 1927)를 보고는 영화배우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1935년 말 동양극장의 개관과 함께 벌인 신인배우 모집에 뽑혀 청춘좌 단원이 되었고, 「춘향전」(1936)의 행수기생 역으로 데뷔하여 여배우가 부족했던 시절, 연중무휴를 내세운 동양극장의 많은 공연에 출연했다. 1937년 6월엔 박제행, 복혜숙, 심영 등과 함께 극단 중앙무대의 창립멤버로 참여하여 부민관 무대에서 「애처가」(송영 작), 「예수나 안 믿었다면」(채만식 작) 등에 출연했다. 「황태자의 첫사랑」의 여주인공 역을 놓고 남궁선과 경쟁했다가 실패하자 중앙무대를 떠났다. 1937년 12월 인생극장 창단멤버로 참여해서 창립공연 「백화」(박화성 원작·박경식 연출)의 여주인공 역을 맡았다. 동아일보 주최 연극경연대회 참가작인 이 공연으로 주연상을 받았다.

인생극장의 해산 후인 1939년 3월, 조선영화주식회사 전속배우로 입사하여 영화 「무정」(이광수 원작·박기채 감독, 1939)의 영채 역을 맡아 출연했다. 1940년에는 동양극장으로 다시 복귀하여 전속극단 호화선의 단원으로, 호화선이 개편된 극단 성군의 창립단원으로 참여하여 「가족」(박영호 작), 「딸삼형제」(이태준 원작), 「결혼생활」(김영수 작), 「고향」(박향민 작) 등에서 주요 배역을 연기했다. 해방 후에는 극단 백화의 창립멤버로 「나라와 백성」(이운방 작, 1946)을, 백화의 후신 극단인 문화극장의 창립작 「황야」(김영수 작, 1947)에 출연했다.

이 시기 그녀는 영화 「자유만세」(최인규 감독, 1946), 「밤의 태양」(박기채 감독, 1948) 등에서 비중있는 배역을 맡아 출연하여 대중에게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또 KBS 라디오드라마 성우로도 활동했다. 연극 「정열의 사랑」(극단 민예, 이광래 작, 1949) 등에 출연해오던 그녀는 1950년 이향, 허영, 주증녀 등과 함께 극단 보랑을 창립하고, 키노드라마 「환상의 거리」(전창근 작, 1950)를 수도극장에서 공연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전쟁 중에도 지방공연을 1년 이상 다녔다. 영화 「처녀 별」(윤봉춘 감독, 1956), 「구원의 정화」(이만흥 감독, 1956) 등에도 출연했고, 신상옥 감독 작품에는 조연급으로 고정 출연하다 시피 했다. 신필름의 연기실장을 하면서 배우 훈련도 시켰고, 자신도 신상옥 감독의 「사랑방손님과 어머니」(1961), 「연산군」(1962), 「열녀문」(1962), 「빨간 마후라」(1964) 등 많은 배역에 출연하면서 무르익은 연기를 선보였다. 1970년대 이후에는 KBS의 일일극 「기러기」, TBC 연속극 「상노」 등 많은 TV드라마에 조역으로 많이 출연했다.

한은진은 40년간 연극, 영화, 라디오드라마, TV드라마 연기자로 활동하면서 선굵은연기나 강렬한 연기를 선보이지는 않았으나, 주역과 조역, 단역을 오가면서 인내하는 한국적 여인상, 자상한 어머니, 인자한 할머니 등 대중에게 친숙한 역할을 잔잔하게 잘 표현해낸 여배우로 평가받고 있다.

상훈과 추모

1962년 제1회 대종상 영화제 여우조연상(「연산군」), 부일상 여우조연상(「열녀문」), 1967년 제5회 청룡상 여우조연상(「까치소리」), 1985년 제24회 대종상 영화제 여우조연상(「오싱」), 1996년 제17회 청룡영화상 특별공로상을 수상했다.

참고문헌

『한국 인물연극사』2(유민영, 태학사, 2006)
「예(藝)에 살다—스크린 40년」(한은진, 『일간 스포츠』, 1978.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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