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비단 바탕에 채색. 세로 176㎝, 가로 100㎝. 유홍의 본관은 진주, 자는 자연(子淵)이다. 영의정을 지낸 유순정(柳順汀)의 아들이다. 1506년 중종반정 때 부친 유순정이 큰 공을 세우자 원훈(元勳)의 자제로서 정국공신(靖國功臣) 4등으로 책록되었다. 1511년 무과에 급제하여 사복시 부정(副正)을 거쳐 1524년 우위장(右衛將), 1526년 훈련원 도정(訓鍊院都正) 등을 역임했다. 1531년 회령부사, 이듬해 충청도 수군절도사를 지내고 경상도 · 전라도의 수군절도사, 원주 · 정주 · 광주 등지의 목사를 역임, 동지중추부사 겸 부총관이 된 뒤 1544년 진산군(晋山君)에 봉해졌다. 1545년 을사사화 때 금직제장(禁直諸將)의 한 사람으로 위사원종공신(衛社原從功臣)에 녹훈되어 가의대부에 승품되었고, 1547년 훈련원도정을 거쳐 동지중추부사가 되었다.
「유홍 영정」은 1506년 아버지 유순정과 함께 중종반정을 성공으로 이끌어 정국공신(靖國功臣) 4등에 책록된 기념으로 제작된 것을 1646년경에 이모한 것이다.명나라 홍무예제(洪武禮制)를 따라 1품에서 3품까지만 흉배를 달게 하던 것을 1505년(연산군 11)에 1품에서 9품까지 흉배 착용을 확대하고 조선적인 동물 문양을 사용하도록 개정하였다. 그런데 1506년에 처음 제작된 이 초상화에서는 4품 이하의 직급은 흉배를 달지 않는 홍무예제에 따라 표현된 점으로 보아 1505년에 개정된 흉배 제도를 따르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화면 우측 상단에는 6대손인 유식(柳寔)이 “분의정국 공신 가의대부 동지중추부사 겸 오위도총부 부총관 훈련원 도정 진산군 유홍 화상(奮義靖國 功臣 嘉義大夫 同知中樞府事 兼 五衛都摠府 副摠管 訓鍊院 都正 晋山君 柳泓 畵像)”이라고 쓴 화제가 있다.
유홍은 청단령(靑丹領) 차림에 허리에는 은대(銀帶)를 두르고 있으며, 양각이 큰 오사모를 쓴 채 교의(交椅)에 앉아 좌안칠분면(左顔七分面)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목구비는 선으로만 표현되었고 주변 얼굴색은 약간 진한 갈색으로 채색하였다. 수염이 짧아 젊은 시절의 모습임을 알 수 있고 눈매와 입매가 강직하고 단정한 느낌을 준다.
둥그스름하게 부풀어 있는 어깨선을 비롯한 단령을 입은 몸의 체형은 다소 과장되어 있으며, 옷 주름은 선묘(線描)로 간결하게 표현하였다. 단령의 옆이 트여 그 사이로 철릭와 답호 자락이 드러나고, 패도 장식이 강조되어 16세기 공신화상의 특징을 반영하였다. 「유순정 초상」과 달리 바닥에 채전(彩氈)이 깔려 있지 않아 이는 품계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유홍의 초상화로 경기도박물관에 위탁된 유홍의 반신상이 있다. 이 초상화는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유홍 영정」의 전신좌상을 흉부까지만 이모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함께 위탁된 1720년경 이모된 유순정의 정국공신화상과 같은 서체로 우측에 “중종조 정국공신 동지중추부사 겸 훈련원도정 부총관 진산군 유공 휘홍 자자연 유상(中宗朝 靖國功臣 同知中樞府事 兼 訓練院都正 副摠管 晉山君 柳公 諱泓 字子淵 遺像)”이라 화제를 적어 1720년경 함께 이모된 것으로 보인다.
「유홍 영정」은 부친 유순정의 정국공신화상인 「유순정 초상」(서울역사박물관 소장)과 같이 화면 위 우측에 6대손 유식이 화제를 남기고 있다. 「유홍 영정」은 1646년경 유홍의 증손 유시정(柳時定)이 충훈부 낭청이 되어 아버지 유순정의 유상을 이모한 「유순정 초상」(서울역사박물관 소장)과 함께 이모된 초상화일 개연성이 높다.
중종반정 직후 관복제도를 반영한 흉배가 없는 초상으로 당시 복식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며, 16세기 초 공신화상의 특징을 잘 반영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