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단 사건 ( )

개신교
사건
1920년 대한독립애국단의 지부로 설립된 강원도 철원 애국단의 와해사건.
이칭
이칭
철원애국단사건
목차
정의
1920년 대한독립애국단의 지부로 설립된 강원도 철원 애국단의 와해사건.
역사적 배경

1919년 5월 신현구·권인채 등은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와의 연계 속에서 독립운동을 목적으로 서울에서 대한독립애국단을 조직하고, 본부의 결성과 동시에 지방조직 구성에 착수하였다. 1919년 3·1운동에 가담해 구속되었다가 그 해 8월 6일 보석으로 풀려난 연희전문학교 기독청년 김상덕은 대한독립애국단에 가입하였는데, 그는 친지인 권인채로부터 강원도에 애국단 지부를 결성해달라는 권고를 받았다.

8월 9일 김상덕은 알고 지내던 철원 남감리교회 박연서 전도사를 찾아가 애국단의 설립 취지를 설명하였다. 그날 밤 박연서 집에서 강대여·김철회·박건병 등이 모여 군단 설치에 대한 1차 모임을 가진 후, 이틀 후인 8월 11일 철원군 동송면 관우리에 위치한 도피안사에서 김완호·이용우·이봉하·오세덕·오세덕 등이 참석한 가운데 애국단 철원군단이 결성되었다.

그 다음날 박연서가 서울에서 대한독립애국단의 권인채 주선으로 신현구를 만난 자리에서 독립운동의 활성화를 위한 조직 확대 권고를 받고 돌아와서 동료와 상의한 끝에, 애국단 철원군단을 애국단 강원도단(愛國團 江原道團)으로 바꾸었다. 간부진은 단장 이봉하, 서무국장 강대여, 재무국장 김완호, 통신국장 박연서, 학무국장 박건병, 외무국원 김철회·이용우 등이었다.

애국단 강원도단은 도단의 활동자금을 각자 각출하고 지방의 독립운동 상황을 조사해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보고하는 한편, 임시정부로부터 전달된 각종 문서를 반포하는 등 임시정부의 지시 및 명령을 이행하였다. 또한 한국이 독립할 때 즉시 행정사무를 접수할 준비까지도 계획하였다. 애국단은 조직 확장을 위해 조종대(趙鍾大) 등을 비롯한 중앙 임원들과 함께 강원도단 기독교인들이 각 군을 순회하여, 원주·횡성·강릉·평창·울진·삼척·평해·영월·정선·고성·양양·금화 등지에 군단을 조직하거나 조직 결성을 시도하였다.

경과

1920년 1월 애국단이 활동을 진행하는 중에 일본 경찰이 이들의 행적을 포착하여 35명의 조직 임원이 체포되었다. 임원 가운데 기독교계 인물로 김상덕을 비롯해 박연서(남감리회 전도사), 조윤여(미감리회 전도사), 김영학, 유한익(남감리회 목사), 방기순, 안경록(미감리회 목사) 등이 포함되었다. 이후 1922년 김상덕 외 43명이 철원애국단 사건으로 정치범죄 처벌령 위반, 출판법 위반, 보안법 위반 등의 죄명으로 판결을 받았다.

참고문헌

『한국독립운동사』3(국사편찬위원회, 1968)
『태백항일사(太白抗日史)』(조동걸, 강원일보사, 1966)
집필자
김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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