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충청남도 논산군 양촌면 명암리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전희균 목사, 어머니는 한경택 여사이다. 원산 루씨여학교(樓氏女學校, Lucy Cunningham School)의 교목인 아버지를 따라 이주한 원산 남촌동교회에서 본격적인 신앙생활을 시작하였다.
루씨여학교에서 성경을 배우고 매년 초청된 부흥회 강사를 통해 신앙훈련을 받았다. 졸업반 때 신학(神學) 공부를 결심하였고, 1931년 협성신학교에 입학하여 이태원교회에서 주일학교를 맡아 지도하였다. 1936년 협성신학교를 졸업한 후 충청남도 논산제일감리교회에 전도사로 부임하여 주변 지교회인 육곡리, 광리, 등리의 세 교회를 순회하며 목회활동을 하였다.
1939년 1월 일제가 신사참배를 강요하자 논산을 떠나 원산의 집으로 돌아왔으며, 그 해 3월 원산 빈아교양원의 실무 책임자로 활동하였다. 신참참배 강요가 원산까지 미치자 빈아교양원 일을 그만두고, 1941년 함흥 북주동장로교회 전도사로 갔다가 1943년 3월에 신사참배 문제로 다시 함흥을 떠났다.
해방 이후 원산중앙교회 전도사로 복직한 그는 1946년 3월 원산중앙교회에서 유재헌 목사를 강사로 초빙하여 개최한 부흥회에서 중생의 체험을 경험하였고, 유재헌 목사 일행이 추진하던 기도원 운동에 동참하겠다는 결심을 하였다. 유재헌 목사의 부탁을 받고 수도원 헌금을 전하기 위해 철원에 왔다가 수도원 살림을 맡아 정착하였다. 1946년 5월 철원 대한수도원생활을 시작하였고, 1947년 3월에 군탄교회(현 신철원교회)를 개척하였다. 이후 대한수도원은 ‘전진 원장 시대’로 접어들었다.
수도원장으로 있던 유재헌 목사는 6·25전쟁 중 납북되었고, 박경룡 목사와 이성해 집사는 목회를 위해 외지로 떠났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수도원을 지켜내며, 전쟁 중 피난민들이 수도원으로 몰려오자 이들을 받아들여 생활하며 전도하였다. 1951년 4월 40여 명의 사람들을 인솔해 수원수용소에서 생활하던 중, 서울 세검정으로 가서 임마누엘기도원과 세검정교회를 복구하고 시무하였다.
1956년 대한수도원 재건작업으로 농사를 지으며 자립의 길을 열었다. 장흥교회와 군탄교회 협조로 수도원 건물을 짓기 시작하였다. 1965년 5월 기독교대한수도원 이사회에서 ‘평생 원장’에 선임되었다. 1978년 캐나다, 미국을 다니며 집회를 인도하였는데, 이후 해외 전도 집회에 집중하는 활동을 펼쳤다. 1996년에 별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