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문팔학사 ()

조선시대사
개념
조선시대 학자 수암 권상하 문하에 있던 8인의 충청도 제자. 호중팔학사.
이칭
이칭
호중팔학사(湖中八學士)
정의
조선시대 학자 수암 권상하 문하에 있던 8인의 충청도 제자. 호중팔학사.
개설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의 수제자였던 수암(遂庵) 권상하(權尙夏)는 충청도 청풍(淸風)의 황강(黃江) 옆 한수재(寒水齋)에서 살았다. 그래서 그의 문하생들을 ‘강문(江門) 제자’라고 하였고, 그 중에서 특히 저명한 여덟 명의 제자들을 ‘강문팔학사(江門八學士)’ 혹은 ‘호중팔학사(湖中八學士)’라고 하였다.

전거마다 그 명단이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남당(南塘) 한원진(韓元震), 외암(巍巖) 이간(李柬), 병계(屛溪) 윤봉구(尹鳳九), 봉암(鳳巖) 채지홍(蔡之洪), 봉암(鳳巖) 한홍조(韓弘祚), 관봉(冠峯) 현상벽(玄尙璧), 천서(泉西) 윤혼(尹焜) 등을 칭한다. 책에 따라서는 추담(秋潭) 성만징(成晩徵), 화암(華巖) 이이근(李頤根), 매봉(梅峰) 최징후(崔徵厚)를 넣고, 윤봉구와 한홍조, 윤혼을 빼기도 한다.

연원 및 변천

강문팔학사는 권상하의 제자들로서, 기호학파 송시열 계열의 학설과 정치노선을 선양하고 전파하는 데 전력하였다. 당대의 병계 윤봉구가 지은 「남당행장(南塘行狀)」에 ‘호학(湖學)’ 5인으로 성징후, 이간, 윤혼, 한상벽, 한홍조를 들었는데, 여기에 자신과 한원진 및 채지홍을 더하여 8인으로 간주하였다.

일몽(一夢) 이규상(李奎象, 1727∼1799)의 『병세재언록(幷世才彦錄)』에서는 한원진, 이간, 윤봉구, 채지홍, 현상벽, 한홍조, 이이근, 성만징을 들었다. 이규경(李圭景, 1788∼1863)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는 이이근과 성만징 대신 전촌(田村) 신경(申憼)과 윤혼을 넣었다. 매산(梅山) 홍직필(洪直弼, 1776∼1852)은 특이하게도 한원진, 이간, 채지홍, 현상벽, 최징후, 윤혼, 이이근, 최징후, 우고산(禹孤山: 성명 미상)을 들었다. 따라서 강문팔학사의 명단은 확정된 것이 아니고, 시기와 지역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었다.

내용

권상하에게는 많은 제자들이 있었지만, 충청도 이외의 제자들은 여기에 포함시키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들을 ‘호중팔학사(湖中八學士)’라고도 한다. 영남 출신이었던 성만징은 저명한 제자였지만, 대체로 여기에 포함시키지 않고 있다. 이들은 스승 권상하와 마찬가지로 과거와 벼슬을 단념하고 성리학에만 몰두하여, 조정에서 그들을 세자시강원, 세자익위사, 사헌부 등의 관직을 주기도 하였으나, 그들은 대체로 사양하고 출사하지 않았다.

‘강문팔학사’가 유명하게 된 것은 한원진과 이간이 사람의 본성이 다른 사물의 그것과 같은지 다른지를 토론한 ‘인물성동이론(人物性同異論)’의 논쟁을 벌이자, 다른 학자들이 여기에 가세하여 100여 년에 걸친 철학 토론이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이들 중 현상벽만이 이간의 ‘인물성동론’(낙론)에 찬동하였고, 나머지 대부분의 학자들은 한원진의 ‘인물성이론’(호론)에 합세하였다.

권상하는 생전에 한원진의 ‘이론’을 지지하였으나, 김창흡(金昌翕), 박필주(朴弼周) 등 서울 지역의 학자들은 이간의 ‘동론’을 지지하였고, 후에는 이들 서울 학자들과 충청도 학자들이 논쟁을 주도하였다. 그래서 ‘낙론(洛論)’ ‘호론(湖論)’이라는 학파가 생기게 되었다.

의의와 평가

강문팔학사는 그 수도 많고 학문 수준도 높아 이이(李珥)-김장생(金長生)-송시열-권상하로 이어진 정통 기호학파의 학설과 정치적 입장을 계승하고 전파하는 데 기여하였다. 무엇보다도 그들 내부에서 ‘인물성동이론’의 논쟁을 벌임으로써 조선 성리학의 심성설(心性說)을 심화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참고문헌

『병계집(屛溪集)』
『병세재언록(幷世才彦錄)』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매산집(梅山集)』
『한수재집(寒水齋集)』
『남당집(南塘集)』
『외암집(巍巖集)』
『조선후기 성리학』(류명종, 이문사, 1985)
『한국유학사』(배종호, 연세대학교 출판부, 1974)
「인물성동이논쟁의 요인」(홍정근, 『한국사상사학』18, 한국사상사학회, 2002)
「인물성동이론과 호락논쟁」(금상곤, 『유교사상연구』8, 한국유교학회, 1996)
집필자
이영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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