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시보 ()

개신교
문헌
1932년에,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 종교교육부에서 한국의 장로회 전체를 대상으로 교단 간의 정보 교환을 위하여 창간한 개신교 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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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32년에,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 종교교육부에서 한국의 장로회 전체를 대상으로 교단 간의 정보 교환을 위하여 창간한 개신교 잡지.
편찬/발간 경위

『종교시보』가 창간되기 이전 조선예수교장로회총회 종교교육부에서는 『교회교육』지를 발간해 오고 있었는데, 정인과 목사가 새 총무로 부임하면서 이 사업을 확대하여 『종교시보』라는 이름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내용을 보강하여 발행하였다. 『종교시보』는 1935년 12월 통권 제38호로 폐간되었다. 1936년부터 『종교시보』는 조선예수교장로회 농촌부에서 발간하던 『농촌통신』과 면려회 전국연합회에서 발간하던 『면려회보』와 통합되어 주간 『기독교보』로 제호가 변경되어 발간되었는데 『기독교보』는 『종교시보』의 호수를 계승하여 창간호를 제5권 1호로 표기하였다.

내용

『종교시보』는 한국의 장로회 전체를 대상으로 교단의 소식을 교환하고자 했기 때문에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논문의 경우에는 정인과, 채필근, 조만식, 신동욱 등 당시 한국 장로회의 대표적인 지성인들과 감리회의 전영택 등이 집필을 맡아 수준 높은 연구 성과를 내었으며, 총회 기간에는 총회 소식, 각 노회 기간에는 각 노회의 결의사항을 포함했다. 봄에는 각급 학교의 졸업과 입학 소식을 전했으며, 여름에는 각 지역의 지도자 강습회와 각 교회의 여름성경학교 개최사항 등을 구체적으로 전하였다.

의의와 평가

『종교시보』는 1932년 12월부터 1935년 12월까지 3년 동안 한국 장로회 2,600여 교회와 650여 기관(학교 및 병원), 그리고 20만 8천여 신도들의 크고 작은 소식들을 생생하게 전했던 귀중한 역사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참고문헌

『한국기독교 신문·잡지백년사 1885~1945』(윤춘병, 감리교신학대학교출판부, 2003)
「종교시보의 자료적 가치」(윤춘병, 『한국기독교사연구』9,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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