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시 소재지에서 서남쪽으로 65㎞ 정도 떨어진 양수향(凉水鄕) 외차구촌(外岔溝村) 서쪽의 칠개정자산(七個頂子山)에 있다. 1983년에 집안현 문물조사대가 칠개정사산에 형성된 협곡의 남쪽 끝부분에서 발견하였다.
관애는 남쪽으로 압록강 북쪽 강변에서 시작하여 북쪽으로 고마령(古馬嶺)에 접해 있는데, 남북 0.30.6㎞, 동서 1.5㎞ 길이의 협곡을 가로질러 돌로 쌓은 모습이다. 곧 자연석을 거칠게 다듬어 쌓았는데, 계곡을 중심으로 동쪽 벽과 서쪽 벽으로 나뉜다. 동쪽 벽은 길이 60m로, 끊어진 서쪽 끝부분을 제외하고 보존 상태가 양호한 4043m 구간은 기초 부분의 너비가 911m이고, 최고 높이는 2.4m인데, 그 가운데 10m 정도는 수평을 이루고 있다. 동쪽 벽의 남쪽 8m 지점에는 길이 20m, 너비 3.5m, 잔존 높이 11.2m의 부벽(副壁)이 남아 있는데 참호(塹壕)로 추정된다. 서쪽 벽은 길이가 7075m이고, 수평 길이는 약 50m이며, 기초 부분의 너비는 8.510m이며, 잔존 높이는 0.6~2.2m이다. 한편 서쪽 벽의 동쪽 끝부분 안쪽에는 길이 15m, 너비 4.5m의 옹성(甕城)이 있다.
이 관애의 축조 방법은 관마산성(關馬山城)과 매우 비슷하며, 특히 부벽이나 참호를 사용한 것도 거의 똑같아서, 문헌에 기록된 고구려의 ‘축단위성(築斷爲城)’의 형식과 부합된다. 성벽 남쪽의 평지에는 적석묘가 분포하는데, 이로 보아 고구려의 군사시설로 추정된다.
이 관애가 자리한 외차구는 혼강(渾江) 하구의 왼쪽에 위치하였으므로, 수로를 이용하여 발해만이나 서해로 진출할 수 있는 수로 교통의 요지이다. 이 관애는 고구려의 수로 교통로를 통제하던 군사 방어시설 가운데 하나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