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암서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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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에 있었던 조선후기 이인복 등 3인의 선현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
이칭
이칭
면암사(冕巖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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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에 있었던 조선후기 이인복 등 3인의 선현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
개설

1856년(철종 7)에 고려 후기 문신인 이인복(李仁復, 1308∼1374), 한철충(韓哲沖, 1321∼?), 김준(金俊) 등 삼현(三賢)을 제향하기 위해 건립된 서원이다.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 때 훼철된 이후 복원되지 못한 채 현재에 이르고 있다.

내용

이인복은 성주이씨 이조년(李兆年)의 손자로 일찍이 백이정(白頤正)에게서 수학해 성리학에 밝았다. 1326년(충숙왕 13) 문과, 1342년(충혜왕 복위 3) 원나라의 제과(制科)에 급제하여, 밀직제학(密直提學)·삼사좌사(三司左使)·삼사우사(三司右使)·판삼사사(判三司事) 등을 지냈다.

몽계(夢溪) 한철충은 1341년(충혜왕 복위 2) 생원시에 장원, 1353년(공민왕 2) 계사방 문과에 급제하여 사헌부 장령(司憲府掌令)‧양광도안렴사(楊廣道按廉使)‧전법판서(典法判書) 등을 역임하였다. 목은(牧隱) 이색(李穡)으로부터 보통 사람들이 범접하지 못할 학문과 문장을 갖추었고 지조와 절개 또한 빼어나서 한 나라의 승상(丞相)이 될 만한 재목이라는 칭찬을 들었으며, 면암서원에 함께 향사된 이인복과 친분이 두터웠다. 고려가 패망하자 고려조의 충신들과 함께 경기도 개풍군 두문동으로 들어가 은둔하였다. 이후 경상도 합천 용주면(龍州面)으로 이거하여 망송재(望松齋)를 짓고 매일 고려의 수도인 송도를 바라보며 충절을 지켰다.

사당인 면암사(冕巖祠)는 1856년에 건립되어 상량하였고, 그 중 한철충의 위패는 1858년(철종 9)에 봉안하였다. 「합천면암사상량문(陝川冕巖祠上梁文)」과 「면암서원몽계한선생봉안문(冕巖書院夢溪韓先生奉安文)」이 『서원세고(西原世稿)』에 수록되어 있다. 면암사 상량문은 사간원 대사간 이원조(李源祚)가, 봉안문은 이경재(李景在)가 지었다.

참고문헌

『몽계선생유적(夢溪先生遺蹟)』
『서원세고(西原世稿)』
『응와집(凝窩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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