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9년(선조 12)에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 1450∼1504)을 향사하기 위해 창건된 서원이다. 1699년(숙종 25)에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 1538∼1593)을 추가 배향하였다. 1868년(고종 5)에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된 이후 복원되지 못한 채 현재는 터만 남아있다.
정여창의 관향(貫鄕)이 하동이므로 서원을 창건하자는 지역 유림들과 하동정씨 후손들의 공론에 의해 1579년에 창건되었다. 임진왜란으로 하동성이 침략당할 때 쌍계사(雙磎寺)와 함께 영계서원(永溪書院)도 분탕(焚蕩) 및 훼손되어 보수하지 못한 채로 있다가, 읍기(邑基) 이건을 계기로 하여 1669년에 하동현 횡포(橫浦) 내기(內基) 서편(현 서원동)으로 이건하였다. 같은 해 서원을 이건한 뒤 김성일의 위패를 추가로 배향하였다.
김성일은 영계서원 건립 당시 순찰사로 있으면서 서원 건립을 적극 지원하였다. 1579년에 서원이 완공되자 영계서원이라 이름하고, 최초의 향사 때 직접 축문을 지어 올렸다. 이후 강당을 중수할 때 박태무(朴泰茂)가 「영계서원강당중수고유문(永溪書院講堂重修告由文)」을 썼는데, 『서계집(西溪集)』에 실려 있다.
영계서원은 조선시대 서원 설립의 주요 근거 중 하나였던 관향을 계기로 건립된 대표적인 사례이다. 순찰사 김성일의 적극적인 지원하에 조선시대 사림의 종장이었던 일두 정여창의 관향에 건립된 서원으로 초창기 조선 서원의 설립 배경과 특징을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