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시 기안동에 소재한 고금산 정상부(해발 99m)에 위치한다. 서울대학교박물관이 2000년에 학술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청동기시대 주거지 2기와 원삼국시대 주거지 3기 및 저장구덩이 1기, 고상식(高床式) 건물지 1기를 확인하였으며, 고구려토기와 신라토기도 채집하였다.
청동기시대 주거지 2기는 장방형의 평면 형태를 가지며 내부에 화덕자리와 저장구덩이 등이 배치되었다. 1호 주거지에서 구멍무늬토기〔孔列土器〕, 갈색마연호(褐色磨硏壺), 반월형석도, 갈돌, 탄화된 쌀알 등이 출토되었다. 갈색마연호의 외면에는 끈으로 엮은 망으로 토기를 감싼 흔적도 남아 있다. 연대는 방사성탄소연대 결과를 토대로 하여 청동기시대 전기에 해당하는 서기전 12세기에서 11세기로 추정하고 있다. 주거지 주변의 퇴적층에서 원형점토대토기 파편도 출토된 점에서 볼 때, 후기의 주거지도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원삼국시대 주거지는 3기 모두 장방형으로, 呂자형 또는 凸자형 같은 출입구시설은 보이지 않으며, 2호 주거지의 경우 남쪽 모서리에서 부뚜막이 확인되었다. 유물은 경질무문토기와 타날문토기로 이루어져 있으며, 시루는 무문인 것과 타날문인 것 두 가지가 있다. 주거지와 저장공, 그리고 고상식 건물의 연대는 서기 2세기 후반에서 3세기 전반의 범위에 들어가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삼국시대의 고구려 유물은 수막새와 파수편이 있으며, 수막새의 경우 평양 대성구역 청암리 일대에서 출토한 것과 유사하다. 신라 유물은 인화문(印花文)이 시문된 뚜껑을 비롯하여 완, 호, 병 등이 있다. 이 유물들은 7세기 후반에서 8세기 초로 편년되는 것인데 통일신라시대에 속할 가능성도 있다.
산 정상부에서 청동기시대 주거지와 원삼국시대 주거지가 확인됨으로써 고지성(高地性) 취락의 한 유형으로 분류가 가능하다. 고구려 수막새와 신라 인화문토기의 존재는 이 지역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말해주는 고고학자료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