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초사 당간석주기 ( )

고대사
유물
문화재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의 중초사지에 있는 남북국시대 당간석주(幢竿石柱)의 명문(銘文).
국가지정문화재
지정 명칭
안양 중초사지 당간지주(安養 中初寺址 幢竿支柱)
지정기관
문화재청
종목
보물(1963년 01월 21일 지정)
소재지
경기 안양시 만안구 예술공원로103번길 4 (석수동) / (지번)경기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 212-1
정의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의 중초사지에 있는 남북국시대 당간석주(幢竿石柱)의 명문(銘文).
개설

당간석주는 보력(寶曆) 2년인 827년(흥덕왕 2)에 건립되었으며, 높이는 370㎝이고,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서쪽 석주의 외면에는 명문이 새겨져 있는데, 명문은 세로 176㎝, 너비 52㎝ 범위에 약 6㎝ 크기로 6행 123자가 음각되었다. 서체는 해서체이며, 찬자와 서자는 알 수 없다.

내용

석주기의 내용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보력 2년 세차(歲次) 병오년 8월 6일 신축일에 중초사 동쪽 승악(僧岳)의 돌 하나가 갈라져 둘을 얻었다. 같은 달 28일에 두 무리가 옮기기 시작하여 9월 1일에 이곳에 이르렀으며, 정미년 2월 30일에 모두 마쳤다.

당시 절주통(節州統)은 황룡사(皇龍寺)의 항창화상(恒昌和上)이다. 상화상(上和上)은 진행(眞行法師)이며, 정좌(貞坐)는 의열(義說)법사이다. 상좌(上坐)는 연숭(年嵩)법사이고, 사사(史師)는 둘인데, 묘범(妙凡)법사와 칙영(則永)법사이다. 전도유내(典都唯乃)는 둘인데 창악(昌樂)법사와 법지(法智)법사이다. 도상(徒上)은 둘인데, 지생(智生)법사와 진방(眞方)법사이다. 작상(作上)은 수남(秀南)법사이다.

현황

최근에 중초사지에서 ‘안양사(安養寺)’라고 쓰인 기와조각이 발견되어 남북국시대 중초사와 고려시대 안양사와의 관계가 주목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석주기의 명문으로 인하여 당간석주가 위치한 절터가 중초사(中初寺)라는 사실과 더불어 당간석주는 827년(흥덕왕 2)에 건립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석주기는 당간석주의 조성에 관여한 승려들의 직책인 절주통(節州統)을 비롯하여 상화상(上和尙), 정좌(貞坐), 상좌(上坐), 사사(史師), 전도유내(典都唯乃) 등의 승관직이 기록되어 있어서 9세기 전반의 승관제(僧官制)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이와 함께 명문에는 당간석주의 건립에 소요되는 기간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고대 석조물의 건립과정뿐만 아니라 신라식의 속한문(俗漢文)을 혼용하고 있어 고대국어사의 연구에도 좋은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참고문헌

『한국금석문집성』 14(김복순·한정호, 한국국학진흥원,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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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승관제와 지방지배」(강봉룡, 『전남사학』 11, 1997)
「자장의 교단정비와 승관제(채상식, 『불교문화연구』 4, 1995)
「통일신라 금석문을 통해 본 승관제도」(정병삼, 『국사관논총』 62, 1995)
「신라 승관제에 관한 재검토」(박남수, 『가산학보』 4, 1995)
「신라 승관제의 성립과 기능」(이수훈, 『부대사학』 14, 1990)
「신라 승관제와 불교정책의 제문제」(이홍직, 『백성욱박사송수기념불교학논문집』, 1959)
「中初寺幢竿石柱記」(鮎貝房之進, 『雜攷』 6,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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