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사(高麗史)』에 따르면, 예종 3년(1108) 7월에 왕이 사자(使者)를 동계(東界)에 보내 진정사(鎭靜寺)에서 문두루도량(文豆婁道場)을 개설하고 비사문사(毗沙門寺)에서는 사천왕도량(四天王道場)을 열어 변방의 오랑캐를 물리쳐 달라고 빌었다고 한다. 문두루도량이나 사천왕도량은 호국적 의미의 불교의식으로 특히 사천왕도량은 국가의 태평을 기원하기 위해 지국천왕(持國天王)·광목천왕(廣目天王)·증장천왕(增長天王)·다문천왕(多聞天王)의 사천왕을 모시는 법회이다. 당시 완안여진(完顔女眞)이 고려를 침략하자 불력(佛力)을 통해서 이를 물리치기 위해 이와 같은 의식을 개설한 것이다. 한편 1481년(성종 12)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도 이 사찰이 존재하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고려시대에 호국 도량으로서의 의미를 갖고 있었던 비사문사의 명맥이 조선 전기에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후의 내력이나 폐사된 시기는 전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