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동종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분된다. 맨 윗부분에는 용뉴와 음통이 있는데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과 음통 장식은 조선 시대에 주조한 종 가운데 신라적 전통을 잘 계승한 사례이다. 상대에는 범어가 새겨져 있고 가운데에는 보살상이 부조되어 있다. 연곽도 네 군데가 완벽하게 남아 있다. 하대에는 종의 주조 연대와 관련 시주자의 성명이 새겨 있다. 이 종은 아담한 규모인데 용뉴는 단룡으로 용의 혀 위에 여의주를 배치하면서 음통위에 연화를 장식하였다. 이것은 17세기 승장(僧匠)인 죽창(竹猖)과 정우(淨祐)가 처음 시도한 이래, 사인(思印)계가 계승한 용뉴 표현방식이다. 머리를 치켜든 용이 혀를 말아 여의주를 움켜쥐고 있으며 꼬리로 음통을 휘감은 모습은 탄력성을 느끼게 한다. 종신(鐘身)은 입구가 약간 벌어진 모습이나 전체적으로 균형 잡힌 형태이다. 천판과 종신이 만나는 부분을 가는 조선(條線)으로 구분하였고 그 아래인 상대에 2줄의 범자문원권대(梵字文圓圈帶)를 장식하였다. 이처럼 범자문으로 종의 상대를 장식하는 기법은 조선 후기의 특징이다. 상대 아래에는 약간의 간격을 두고 사다리꼴 모양의 연곽(蓮郭)과 보살상을 교대로 배치하였다. 연곽의 둘레에는 화문을 장식하였는데 사실적인 꽃 모양이 돋보인다. 내부에는 9개의 연뢰(蓮蕾)가 있다. 연곽 사이에는 왼쪽으로 몸을 틀고 우아하게 서 있는 총 4구의 보살입상이 있다. 원형의 두광을 지니고 연꽃 대좌 위에 서 있는 보살상은 화려한 보관을 쓰고 합장한 모습이다. 이러한 자세는 조선 후기 불화의 보살상과 흡사하다. 종의 하단부에는 2조의 돌기선을 두르고 그사이에 문양대를 양각하였다. 명문에 의하면 이 동종은 새롭게 주조된 것이 아니라 개주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는데, 1759년에 안심사 사적비를 세우고 나서 기존의 동종을 보수하여 다시 주조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