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집회(報恩集會)
보은집회는 1893년 3월과 4월 동학교도가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해 ‘척왜양(斥倭洋)’을 내걸고 충청북도 보은에서 개최한 집회이다.
최제우의 신원을 요구한 광화문 복합상소가 실패한 후에 척왜양의 기치를 내걸고 개최한 집회이다. 전국에서 1만 내지 2만 명 정도의 교도가 모인 것으로 추산된다. 정부에서 동학을 위협세력으로 간주하여 강경하게 대응하였다. 반면에 관군과 무력 충돌을 우려한 동학지도부는 평화적인 노선을 선택하여 해산을 결정하였다. 동학의 현실대항적 능력을 한 단계 높여서 동학농민혁명의 발생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된다.